<만나고 싶었습니다⑯>부천대학 산업디자인과 정기영 교수


"부천에서 선점해 개최한 무형문화유산엑스포... 그 속에서 안락함 없이 굉음이 나고 상처만 입게 된다면, 두 번 다시 부천이라는 나무에 둥지를 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정기영 교수는 무형문화유산엑스포가 이대로 꺾인다면, 앞으로 "문화"라는 용광로를 설치하는 일이 영원히 힘들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왜 무형문화유산인가.



우리가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오케스트라 등 아무리 수준 높은 문화산업을 추진한다 하여도 그것엔 한계가 있다.



이른바 ‘오리지낼리티(originality)’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만화축제와 영화제, 오케스트라에 많은 정성을 들인다 하더라도, 프랑스의 ‘안시 애니메이션페스티벌’, 독일의 ‘베를린영화제’, 오스트리아의 ‘빈 오케스트라’가 갖고 있는 오리지낼리티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짧게는 백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의 뛰어넘을 수 없는 시간적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섭섭하게 들릴지 몰라도 5대 문화산업에 있어서 ‘오리지널’은 분명 부천, 즉 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농악을 모티브로 한 ‘난타’와 ‘사물놀이’가 미국의 카네기홀이나 영국의 에든버러 등에서 세계의 명품으로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문화 콘텐츠인 것처럼 우리가 절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세계화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전통문화’다.



다양한 전통문화는 기존 5대 문화사업과 융화, 재생산 될 수 있는 요소로서 전통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책, 전통무용과 음악이 있는 판타스틱영화제의 개·폐막식, 국악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협연 등 그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엑스포는 무형문화유산이라는 블루칩을 활용한 산업화의 장이다. 전통문화를 테마로 하는 지방 도시들의 축제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을 산업화하기 위하여 그것을 시연하고 전시, 판매, 홍보를 통하여 계승, 발전하는 전람회가 ‘부천세계무형문화유산엑스포’가 추구하는 바이다.



강릉, 전주와 무엇이 다른가.



강릉, 전주가 무형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무형문화유산이라는 것이 매력적인 소재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강릉이 사무국을 유치한 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ICCN)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걸작으로 선정된 "강릉단오제"를 비롯하여 "예능민속축제"를 컨셉으로 한 축제, 무용, 노래 등의 예능을 갖고 있는 도시들의 연합체다. 이것을 한데 모아 2012년 문화페스티벌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천은 예능 뿐 아니라 목조각, 금속공예, 옻칠 등 기능부문을 총괄한 문화엑스포로 본질과 형태를 갖춰가겠다는 것이다.



전주의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유네스코의 "아태무형문화유산센터"를 유치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써의 기구다.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에 그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부천은 모든 지자체의 다양한 문화와 상호 교류하고 보완해 나가는 무형문화의 허브로서, 무형문화의 무궁무진한 산업화 콘텐츠를 엑스포라는 용광로에서 녹이고 걸러내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부천의 미래,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열어갈 블루오션인 것이다.



엑스포는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있는데.



사상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적자재정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도 대규모 국책 사업을 통하여 경기부양을 꾀하고 있다.



이른바 한국판 뉴딜 정책은 적자재정을 감수하더라도 시장에 풍부한 통화 공급으로 소비심리의 확대, 경기부양을 추구하는 정책으로 비단 대규모 토목공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IMF때의 공공근로나 정부예산의 조기집행 등의 방법을 예로 들 수 있다.



부천세계무형문화유산엑스포 역시 이러한 정책기조에 의하여 철저하게 부천시민에게 예산이 쓰이도록 진행되었다. 작년 엑스포 예산 64억 중 부천시 예산은 30억 원이다. 도비가 20억 원, 수입금이 14억 원으로 전국무형문화재 선생들의 작품전시와 시연에 쓰인 8억6,0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예산은 부천시민들에게 쓰인 것이다.



고용 창출과 생산유발효과 등은 제외하고도 부천시 예산 30억 원을 사용하여 55억 원이 부천시민에게 돌아갔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세계무형문화유산엑스포를 치러 냈다는 성과까지 얻은 것을 두고 적자운영이라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1조가 넘는 부천시 예산에서 엑스포로 예산낭비를 운운한다면, 한 가정에서 오페라를 보러 가는 것은 미친 짓이라 할 것인가.



왜 부천이어야 하는가.



지난 십 수 년 간 부천은 ‘문화도시’라는 이미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이로 인해 자칭타칭 ‘부천은 문화도시’라는 타이틀로 인식되는 일종의 ‘문화적 코드’로 도시 이미지를 구축해 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부천시가 세계화 시대에 독창적이며, 산업화의 접목이 유리한 소재가 무엇인가로 고민하는 연결 선상에서 ‘무형문화’라는 테마를 발굴, 이를 선점한 것은 시의적절하고, 현명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무형문화란 단순히 전통적인 것에 제한된 개념이 아니라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광범위한 변용이 가능한 주제이며 이를 기초로 다양한 문화적 실험과 응용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동이 틀 때 먼 길을 떠나는 심정으로 움직여야 한다. 부천이 지리적으로 서울과 인천 사이에 낀 애매한 입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부천은 중부수도권 순환벨트의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부천은 서울과 인천에서 가장 쉽게 올 수 있는 도시고 외국에서 가장 쉽게 올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천에는 이렇다 할 게 없다. 지리적 요건, 교통 인프라를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투어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천인 것이다.


왜 문화인가.



부천은 지자체 최초로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도시의 이미지를 타 도시와 차별화 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부천시 시정 캐치프레이즈가 ‘문화로 발전하고 경제로 도약하는 부천시’일 정도로 문화는 부천시의 도시 브랜드이자 미래를 열어갈 원동력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중앙일보와 서울시가 공동 기획한 ‘문화가 도시를 먹여 살린다’라는 르포가 있었다. 흥미로운 기사가 다수 보도되었는데 그 일례로 싱가포르의 ‘에스플러네이드’ 극장 프로그램 총괄 책임자는 ‘왜 문화인가’라는 질문에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가면서 경제의 정체현상이 일어났고, 이는 곧 문화 창의성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문화가 없이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즉, 창조적 경제발전을 위해선 문화가 필수라는 것이다. 문화의 투자는 일자리 창출로 나타났는데, ‘에스플러네이드’ 극장은 2만60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었다고 한다.



일본 ‘요코하마’시는 예술가들에게 주택과 작업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바, 이는 부천의 무형문화재 공방거리 조성 및 활성화 계획과 유사한 것으로서 기능 보유자 및 예술가들의 결집에 의하여 공연, 체험 교육 등 문화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이들의 작업공간으로부터 제공되는 체험을 통하여 시민들과 직접 교류하고 어울리는 도시로 진화하게 되었다.



또한 예술가들의 집결촌은 관광객의 동경과 호기심을 붙잡는데 좋은 효과를 가져와 경제적 파급효과가 연간 1000억 원 이상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몰락한 철강도시 스페인의 ‘빌바오’시가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의 콘텐츠를 유치하여 활기를 되찾은 것은 이미 문화인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며, 프랑스의 작은 항구 ‘깐느’가 세계영화계의 중심으로 우뚝 솟은 사실 만으로도 문화의 힘이 어떻게 도시 브랜드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지 시사하는 바 크다 하겠다.



그야말로 문화가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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