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역사는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우휴모탁국’에 속한 부천은 지금의 원미구 약대동과 도당동, 오정구 내동에 자연부락 형태의 토성이 형성됐는데, 당시 토성은 1950~1960년대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공업지역으로 개발되면서 지금은 자취를 감춰 아쉽기만 합니다.

삼국시대, 부천은 457년 동안 백제 땅에 속했다가 이후 77년간 고구려 영토로, 115년 동안은 신라의 땅으로 각각 속했을 정토로 영토 쟁탈이 치열했던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천(富川)’의 유래가 된 고구려의 지명 ‘주부토’군이 ‘장제’군으로 바뀌었는데, 이들 지명에는 진흙과 하천, 제방 등의 의미가 내포돼 있어 먼 옛날부터 부천이 그만큼 비옥했던 땅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용하는 ‘부천’이라는 지명은 1914년 3월1일 경기도 부평군에서 부천군이 설치되면서 ‘부천’이라는 지명이 등장했습니다. 흔히들 ‘부천’의 지명이 부평군의 부(富)와 인천의 천(川)자를 따서 ‘부천이라는 지명이 탄생한 것으로 알고 있거나, 개천이 많아 개천(川)을 중심으로 부(富)가 흘러넘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천’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제대로 알려면 ‘굴포천(屈浦川)’의 어원에서 찾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윤즉슨, ‘굴(屈)’은 삼한시대 마한의 언어로 추정되며 ‘크고 깊은 포구’로 구한말까지 사용돼 왔으며, 1920년대 한강농지개량조합이 생기면서 농지개량사업으로 김포시 고촌과 서울 강서구 개화산 사이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을 복개하여 농토로 개간하여 부평과 부천을 경유, 한강에 이르는 커다란 천(川)이 형성돼 ‘굴포천’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부천’이라는 지명은 굴포천을 중심으로 ‘부(富)’를 형성하려는 ‘미래지향적인 행정명칭’의 의미를 담고 탄생했다는 사실을 부천시민들이 안다면 ‘부천’이라는 지명이 무척 기분 좋게 다가올 수 있고 ‘애향(愛鄕) 부천’의 함축적인 의미까지 되새겨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富)가 흐르는 도시, 부천’은 앞으로 부천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 크게 향상될 때의 실현된다는 점에서 지하철 7호선 연장건설사업과 구도심 뉴타운 개발사업 등을 통해 부천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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