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교회 윤대영 목사 칼럼]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은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갈 때, 자기의 정체감이 더욱 확실해 진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소속된 국민이라는 것, 이 정체감 때문에 자기 생명 존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애국자도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위치한 해미읍성이 있다. 해미읍성에는 수많은 천주교를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옥살이를 시키고, 살해한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어느 종교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속한 종교를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내놓은 것이다. 이를 순교라고 한다. 인간은 그래서 홀로 살기가 어렵다. 아무리 다원주의 철학의 사회라고 해서 개인주의를 주장하지만, 어쩌면 지금시대처럼 적절한 소속공동체를 간절히 바라는 세대도 없다.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동호회를 만들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시공을 초월하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소외감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동안 씨족 중심의 마을을 이루고 씨족사회라고 할 정도로 씨족관계를 중히 여겼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대가족제도이다. 한 가정에 삼촌까지 함께 살기도 하였다. 대가족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 사이에 갈등이 있기도 하고, 이러한 갈등은 중앙 정치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인간관계는 한국사회에서 뺄래야 뺄 수 없는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이다. 아마 한국만큼 인간관계를 좋아하는 나라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관계가 돈독하므로 좋은 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마 인간관계 없이 가족 복지가 가능할까? 지금은 가족관계가 원만치 못하여 개별 개인의 복지를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왔다. 이 개인적 복지가 준비되지 못하면 생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문제를 정부에서도 큰 과제로 여기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대가족제도의 인간관계에서는 자연스러운 혈연복지가 이루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할아버지나 삼촌이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 해 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할머니나 숙모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 해 살피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핵가족사회 아래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가장 문제점은 사익(私益)을 위한 관계이다. 지금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인간관계가 자기 소속이나 개인의 유익을 위한 인간관계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면 여기엔 정의가 세워질 수 없으며, 합리적인 질서가 성취될 수가 없다. 진도 앞바다의 참사를 살펴보면, 사리사욕을 위한 인간관계가 얽혀서 당연히 해야 할 안전조치라든지 사회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을 포기한 체 무책임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와 너희사이에는 넘지 못 할 경계선이 있다. “우리”란, 인간관계가 맺어진 공동체이다. “너희”란, 우리에게 소속되지 않는 모든 인간관계를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 외에는 다른 공동체가 이익을 추구하는 대로 적의를 가지고 대하기도 하고,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너희들을 무시하기도 한다. 우리를 절대시 하는 것이 현대사회에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사례이다. 하루 속히 이기적 집단정신을 깨고 보다 넓은 나라 전체를 보고, 나아가 인류전체를 보며, 그 안에서 자기를 찾고, 자기가 감당해야 할 역할을 찾아 성실히 수행할 때 보다 나은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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