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 칼럼]

일곱 살배기 소년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의 영정 앞에 서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심리 치료를 받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어느 정도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움을 어찌하라! 사방이 어둑어둑 해지고, 해가 석양으로 지면 밤하늘의 나는 새들도 제 집을 찾아 부지런히 날아든다.

 

그러나 이 소년은 갈 곳이 없다. 집이 없느냐고? 아니다. 분명히 집은 있다. 먹을 것이 없느냐고 묻지도 않아도 된다. 먹을 것도 있다. 옷이 없느냐고 아니다. 입을 옷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다 자기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어린 시절 지금의 주택과 비교하면 신석기 시대의 움막 같은 집이지만, 학교 수업만 끝나면 집으로 곧장 달려간다.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가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들은 안다. 밭으로 논으로 일하러 가셨을 것이다. 그래도 부른다. 습관적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다. 혹시 들려 올, 어쩌다 들려오는 “그래. 이제 왔냐. 어서 마루로 올라와 점심 먹자.” 확률은 10%나 될는지 안 될는지 모른다. ‘혹 그날이 오늘일까’ 하여 불러 보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끼니를 굶는 보릿고개도 있다. 입을 옷이 없어 손바느질로 꿰어 멘 옷도 입어 보았다. 등록금을 내지 못하여 학교에서 졸업을 해도 졸업장을 받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에겐 아버지가 있었다. 배가 고파도, 날이 추워 문풍지가 울리며 세차게 불어 들어오는 겨울 밤바람에 잠을 자지 못해도 괜찮다. 아버지가 옆에 계신다.

 

6.25가 끝난 다음 세계는 한국을 우려 했다. 전 국민이 전쟁의 상처를 입어 정신적 심리적 상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UN도 전문가들을 한국에 파송했다. 출발할 때는 깊은 우려를 했다. 그들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안도의 숨을 쉬었다. “띠”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 더운 여름날 16km가 넘는 오일장에 팔 것과 살 것을 머리위에 이고 가파른 고개 길을 넘고 강을 건넜다. 그런데 반드시 어머니의 등에는 아들이든 딸이든 업혀 있었다. 아이의 머리와 얼굴은 비바람 부는 날 나무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와 한 몸에 묶여 흔들리고 있었다.

 

“띠!” 사랑의 띠로 묶어 자녀를 자기 몸에서 떨어트리지 아니하는 모자(母子)는 하나가 되어 있다. 하나 됨만 있다면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UN으로 돌아가 이렇게 보고 했다. “한국은 전혀 이상 없음. 전후 정서적, 식량적 문제가 전혀 없음” 이라고 보고 했다고 한다.

 

오히려 현재는 “띠”가 풀리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고, 전혀 띠를 묶지도 않는다. 띠가 없는 집도 있다. 엄마는 야누스처럼 자기 사랑과 자식사랑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개인 사랑과 가족 사랑이란 둘 사이에서 오고가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심리적 가족구조가 오늘의 사회 문제의 근본이 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도 먼저 보내고 영정 앞에서 털썩 주저 않자 울음보를 터뜨리던 그 소년은 오직 사랑의 띠가 필요한 것이다. 누가 그의 온전한 이웃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언제든지 자기 행복을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의 길을 가는 것을 최고의 삶의 비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로 얽혀 있는 현실이다.

 

누가 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띠가 없는 사회, 사랑의 띠가 없는 가정이 되어가는 현실은 마치 우주공간에 폐기된 우주선처럼 허공을 공전하고 있을 뿐이다. 이 지구라는 공간에 띠가 끊어진 무한궤도를 도는 금속성 같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윤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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