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중국과 FTA를 체결했다고 해서 모든 언론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어느 신문은 용의 등을 탔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한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고 해석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매우 유익하다. 그러나 우리의 긍정이 모든 미래를 긍정으로 바꾸어주는 것은 아니다.


FTA는 쌍방이 서로 의견이 맞을 때 체결이 되는 것이고, 자국 의회에 통과를 해야 시행이 되는 것이기에 섣불리 속단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다만 세계의 문제가 아시아의 문제이고, 아시아의 문제가 우리나라 문제이고, 우리나라의 문제가 우리 가정의 문제이며, 결국 나의 문제이다.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해변에 서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다. 그리고 한편은 대륙과 이어져 있다. 결국 해양과 맞닿아 있는 면이 삼면이고 보면 해양 국가인지 대륙 국가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해양 국가라면 태평양을 외면할 수 없고, 대륙 국가라면 대륙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양면의 균형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 날 대륙 세력이 한국을 자기 유익의 대상으로 삼는 극단적 행위를 할 때, 해양세력을 이용하는 지렛대의 축으로서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한국의 필수적인 과제이다.

 

해양세력은 세계 경제의 1위와 3위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대륙세력은 한 국가만 세계 경제의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대륙 세력의 가장 최고의 전략은 적으로 하여금 적을 치게 하는 전략이다.

 

해양 세력이 한국에 거칠게 해를 준 사례가 있다. 그것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IMF 환난 때의 사건이다. 그 당시는 대륙 세력이 아직 미흡했고, M&A에 눈을 그리 크게 뜨지 아니할 즈음이었다. 지금의 대륙 세력은 M&A의 명수가 되었고, 뒷받침이 되는 지금도 대단하다. ‘다시 과거의 IMF 환난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덮쳐올 대륙의 필요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있는가?’ 하는 것을 염려해보자는 것이다.

 

외교의 균형이란, 생명이다. 국제 문제를 크게 보거나 복잡하게 보지 말자. 더 나아가 우리의 관계에서 언제든지 풀 수 있는 것이다. 국가와 국가 간에는 윤리도, 교양도, 도덕도 없다. 다만 생존의 논리만 통한다. 휴머니즘이나 아가페 같은 고상한 이론은 통하지 않는다. 생존의 원칙뿐이다.

 

‘부유한 국가가 생존의 고민을 할까?’라고 사치스럽게 생각한다. 부유하면 할수록 생존의 논리가 더 강하다. 어느 땐가 한국의 제일가는 재벌이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항상 이것이 걱정이다.’라고 할 때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그러나 그 때 그 말은 선견지명이 있는 말이었다. 실제 그 기업은 위기를 만나고 있다. 그 말을 했던 장본인은 투병 중에 있고, 그 아들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옛날 같은 신뢰성은 감소된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자는 몸집이 우람하다. 그러나 사자는 몸집이 크지만 배가고파야 맹수가 되는 것이다. 동물은 배가 고파야 생존의 논리로 돌아가지만 사람은 배가 부르면 부를수록 생존의 논리로 돌아간다는 다른 점이 있다. 경주에 살던 옛 최부자 이야기는 이상론이다. 현실로서는 그러한 사람을 찾을 수도 없다. 극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균형감각은 우리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본 생존 방법론이다. 이를 망각할 때, 우리는 하루아침에 큰 상처를 입을 수가 있다.


지난날의 IMF때 토종기업들이 통째로 해양세력에 삼킴을 당하였다. 태풍을 맞은 것이다. 뿌리가 나무에서부터 얕은 뿌리의 풀포기까지 다 쓰러졌다. 처절한 금 모으기를 지금도 상상해보면 불쌍하고, 초라했던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기억하고 있다. 그 때도 균형감각을 잃었던 것이 큰 원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습관상 양대 세력의 이야기를 하면 사대적 사고라고 비난을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사대적이라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홀로 살기에는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람만 있을 뿐 자원이 전무한 상태이다. 그렇다고 시장이 넓은 것도 아니다. 이웃 관계없이 독단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고로 관계를 잊고서는 우리의 미래를 논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향후 몇 년이 되어야 FTA가 발효할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사정상 빠른 시일 내에 발효될 공산이 크다.

 

쌀 개방을 하지 않았다고, 대단한 유익함이 있다고 웃을 일은 아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잘 유지 해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건강상 유익하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성서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이다. 편애나 사랑의 치우침을 엄금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랑의 윤리는 생존 욕구 다음에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랑 없는 생존 논리는 본능의 지배 받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서로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해가는 누구든지 사랑하는 이웃 관계가 최우선 순위이다.

저작권자 © 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