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문명의 발전이 인간의 이상을 이루어 주리라는 기대에 부응하여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IT분야에는 놀랄만한 발전을 가져오고 있다. 사용하는 기기의 그 이치를 알려고 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편리로 말하면 표현불가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은 점점 미개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어둡게 하고 있다. 요즘은 황혼이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혼을 청구하는 쪽이 남성이 40%에 속한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는 반란인 것이다. 남성은 스스로 가정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남성이 자라서 가장의 노릇을 하였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역할을 천부적 의무로 알고 지켜왔다. 이러한 연고로 자의든 타의든 본 부인을 두고 다른 여성을 사귄다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다.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한번 집을 나서면 다시는 돌아오지 아니한다. 이점이 여성과 남성의 큰 차이였다.

지금까지 줄곧 여성이 이혼청구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남성이 이혼청구를 하는 사유를 들어보면, 청년과 중년에 가정을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 결과 안정된 가계를 이루었다. 그런데 막상 은퇴를 한 노년에 가서 남성은 여성화되고, 여성은 남성화 되는 것이 생리적 현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가정 경제의 관리권을 여성이 가지고 있다가 보니 남성이 자기 뜻대로 돈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로 인하여 불만이 많아지고 소외감을 느끼며, 자존심마저 무시되는 것을 참지 못해 소위 가장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으로서 천부적 인성은 인내와 희생, 그리고 책임의식을 망각한 비인간화에 한 단면인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서양문화의 유입 및 정보사회가 만든 하나의 환경에 적응 하지 못하는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로서의 남성, 남편으로서의 남성, 그리고 가족 보호 본능과 끈질긴 인내심이 약화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를 키울 때,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 어떤 비극이 다가와도 참고 인내하고 가정을 책임지는 인성으로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가정을 남성이 포기한다는 것은 비인간화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녀는 천륜이라고 한다. 사람과 사람과의 의도적 관계가 아니라 하늘이 맺어준 관계가 천륜이다. 부모가 자녀를 낳고 싶다고 해서 자녀를 낳는 것도 아니며, 자녀가 어느 부모에게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선택할 수가 없다. 인간의 의도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아니한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사랑하도록 구조되어 있다. 생명가진 모든 것들은 존재와 번성을 위해서 종족본능을 최우선시하는 인간으로 창조되었다. 미물에서 인간까지 생명가진 것들은 생명의 존재의 최우선이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생명체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에는 격이 있다. 그것은 인격으로 자라도록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부모들은 하나 밖에 없는 자녀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자녀 위주의 양육을 하고 있다. 자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사랑인 줄 아는 부모들의 양육의 결과는 결국 인격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비인격으로 키워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초. 중. 고등학생 나이의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한다.

부모님에 대한 예의는 온데간데없고, 욕설과 폭력으로 응대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초등학생이 부모님 앞에서는 공손한 것 같지만 자기들 또래가 모이면 부모님의 호칭이 욕설로 바뀌고, 부모에 대한 험담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한 가정에서 한 자녀를 키우는 원인도 있지만, 공동체 생활이 불가할 정도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노후의 보양문제도 심각하다. 부모가 잘못 양육한 탓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자녀 양육을 바로 하지 못한 그 씨앗이 자란 열매인 것이다.

사랑이라고 해서 모두 유익한 것은 아니다. 사랑에는 의(義)를 겸하는 사랑만이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義)가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은 독소가 있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윤리가 있는 양육, 정의가 있는 양육, 도덕이 있는 양육만이 참 사랑을 하는 것이다. 미성숙한 자녀가 바라는 것은 본능의 욕구에 의한 것이다. 이를 충족시키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해롭게 하는 악의의 사랑임을 아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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