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생존자 강병기 씨 인터뷰]

 

▲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강병기씨

세월호 참사 이후 200일을 넘겼다. 부천은 당시 7명이 탑승해 2명이 생존했다. 그 중 한명인 강병기 씨를 지난주에 만났다. 원미구에 거주하고 있는 강 씨는 인터뷰에서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말을 이었다. 4월 16일 사고당시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모습이었다. 가끔 이유 없이 화가나 다툼이 벌어질 때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정신적 상처와 더불어 경제난이 강 씨의 걱정을 더하고 있었다. 초기 긴급생활안정자금 지원 이후에는 동 주민센터도 부천시도 관심을 끊은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지금까지 마땅한 직업을 구하지 못해 부인의 벌이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고3이었던 강 씨의 둘째 아들은 수능도 보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대학진학을 미리 포기한 것이다.

인터뷰에서 강 씨는 정부와 부천시의 지원에 아쉬움을 표했다. 한 달에 한번 순천향대 부천병원에서 상담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이후 강 씨의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시 행정지원국 김원경 자치협력팀장은 “주기적으로 강 씨와 연락을 취하며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팀장은 “강 씨를 지원하기 위한 방법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지만 경제적 지원은 쉽지가 않다”며 “연말을 맞아 김치나 쌀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다음은 강병기 씨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세월호 사고가 200일을 넘겼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직도 사고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 배 안에서 물이 차오르던 모습, 물 회오리에 쓸려가던 학생들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떠오른다. 잠을 자기 위해 눈만 감으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잠도 편히 못자고 있다. 당시 탑승자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던 승무원들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강 씨는 한동안 사고당시 현장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그 당시 모습을 지켜본 사람으로 승무원들의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생각도 든다.” 

▲ 강병기씨는 'REMEMBER20140416' 새겨진 팔찌를 보이며 아직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지원은 없었나.
“사고와 함께 작업도구를 실었던 트럭도 가라앉아 당장 일을 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지난 5월, 퇴원 이후 마땅한 일자리도 못 잡고 있어 집사람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사고 이후 3개월 정도 108만원씩 긴급생활지원이 있었지만 4명의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마저도 지원이 끊겼다. 올해 고3이었던 둘째 아들은 수능도 보지 말라고 했다. 학비대줄 능력이 없으니 수능 보지 말라고 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알려줄 생각이다.”

-지원이 부족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무엇보다 관심이 부족하다. 언론도 유가족에게 관심이 쏠리다 보니 생존자들에게는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정부도 유가족 보상 외에 생존자들에게 구체적인 보상이나 배상에 대한 안내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언론이나 부천시의 관심도 부족한 것 같다. 부천시민이 7명이나 탑승했는데 이제 관심을 접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있다. 사고초기 시장과 시의원들이 찾아왔지만 그 이후에는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다. 시에서 담당하는 공무원이 가끔 연락을 하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그것도 뜸해졌다.”

-부천시의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생활이 어려워 시 담당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지원을 요청했더니 추석에 쌀20킬로를 보내주더라. 그리고 또 감감무소식이다. 동 주민센터도 마찬가지다. 단지 경제적인 지원이 아니더라도 세월호 생존자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방향에 대해서도 안내를 해줬으면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개인 입장에서는 정보가 한계가 있지 않나. 생존자들의 경우에는 유가족처럼 별도의 연락체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다른 생존자들과 연락도 되지 않는다.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기다리라고 하는 셈이니 답답하다.”

-그 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혼자뿐이지만 아직 부천에 세월호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생존자 2명 중 1명은 이주한 상태) 사고 초기에는 몸과 마음이 아파 언론인터뷰를 고사했지만 이제 모두가 그날을 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아직도 희생된 학생들이 떠올라 학교 근방에는 가지도 못할 정도로 괴롭다. 가끔씩 이유 없이 화가 나 집사람과 다투기도 한다. 꼭 하고 싶은 말은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단지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그날의 기억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부천시민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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