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과 붓만이 아닌 삼베, 나무 등의 재료 활용

부천신문에서는 부천에 터를 잡고 활동하고 계신 자랑스러운 부천의 예술인 창현 박종회 선생의 시화 및 문인화 작품을 한달에 한 번 연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문인화의 한 획을 그은 창현 선생의 작품들 중 먹과 붓만이 아닌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문인화 스타일을 개척하시고 '가장 한국적인 것 찾기'의 기초가 된 작품인 신라의 향가 '처용가'와 '제망매가'의 시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제망매가(광목, 삼베, 수묵담채 / 1984년 作)

신라 경덕왕때의 승려 월명사가 지은 '제망매가'
'제망매가'는 신라 경덕왕때 월명사가 지은 향가로 신라향가의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으며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노래다. 기록에 따르면 작가가 재(齋)를 올리며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홀연히 바람이 불어 지전(紙錢)을 날려 서쪽(서방 극락세계 방향)으로 사라졌다고 한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처럼 이 시는 죽음을 불교적(종교적)으로 승화 시키며 죽음에 대한 서정을 담고 있다.

보통 문인화, 동양화라고 한다면 그림을 그리는 종이는 '화선지'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창현 선생은 이러한 재료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를 활용한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 이 '제망매가'는 화선지의 역할을 하는 재료로 광목을 사용해 광목 특유의 노란빛을 바탕으로 두고 글씨를 쓴 부분은 삼베로, 스님이 그려진 부분은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사용했다. 흔히 장례를 치를 때 시신에 입히는 옷인 수의는 노란빛을 띠고 실제로 삼베가 작품에 사용, 재료를 이용해 죽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또 스님의 그림 위로 검은빛에서 황토빛으로 그라데이션 되는 부분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특히나 이 작품은 '우리의 것 찾기', '우리의 것, 우리의 시를 형상화 해보자'를 염두에 두고 제일 처음 제작된 작품이며 그 시발점이 된 작품이라고 창현 선생은 설명했다.


신라시대 처용이 지은 '처용가'
'처용가'는 고려시대의 가요로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은

▲ 처용가(화선지, 수묵담채 / 54.5×136.5 / 1984년 作)

향가를 발전시킨 노래다. 이 향가의 배경을 살펴보면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왕의 정사를 도왔는데 왕은 그를 잡아두기 위해 처용에게 미녀를 아내로 주고 벼슬을 주었다. 그의 아내가 너무 아름다워 역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해 몰래 집에가 그의 아내와 밤을 보내게 됐다.

처용이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처용가'를 부르며 춤을 추며 물러나자 역신이 처용앞에 꿇어 앉아 노하지 않는 그의 마음을 아름답게 여겼다. 역신은 처용의 형상을 그린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다하여 이후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문에 그려 붙여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경사스러움을 맞이 했다는 설이다.

이 작품에서 문살은 판자의 모서리로 탁본을 뜨듯이 찍어내 문살의 진하고 연하기를 자연스러운 농담으로 나타냈다. 또 이 작품은 실제 우리 전통 가옥의 '문' 크기로 제작돼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테두리는 나무를 이용, 목공소에서 제작해 실제 문의 느낌이 나도록 했다. 또 문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대장간에서 사온 문 장식을 달아 문에 비친 두 남녀의 모습을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처럼 창현선생은 재료의 고정관념, 문인화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를 활용한 작품, 새로운 관념의 작품을 위해 고심하고 또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문인화가 창현 박종회 선생

창현 박종회 선생은 문인화의 거장으로 현재에 이르러 문인화나 동양화가 현대 예술계에서 서양화에 비해 주목받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꾸준한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 지난 6월에는 프랑스 메타노이아 갤러리에서 초청받아 동양화의 매력을 전달하고 왔다. 선생은 작품활동 뿐 아니라 부천 춘의동에 화실을 열고 후진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박종회 선생은 지난 1981년 동아일보 대상 수상이후 작품활동을 하는데 있어 '가장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끊임없는 한국성 찾기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대를 막론, 우리의 시를 통해 문인화를 이해하고, 또 문인화를 통해 우리의 시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해왔다. 박종회 선생의 이러한 시도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은 앞으로 우리의 먼 미래, 우리의 역사에 있어서도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며 문인화의 맥을 이어주는 그 가치는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 박종회 선생 약력
1977년~2013년 개인전 13회
1981년 동아미술제 대상 수상
1989년 청년작가전, 대한민국 서예대전 등 심사 운영 등 다수 역임
1997~2001년 한국 현대 서예문인화 협회 이사장 역임
2000~2005년 원광대학교 동양학 대학원 초빙 교수 역임
2007~2011년 로또서예 문화상, 열린시학한국예술상,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
20013년 한국예총 명인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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