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보고 천만 이상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영화나 소설의 주제가 주로 어머니일 때 눈물을 많이 쏟았다. 그러나 이번엔 아버지의 부성애에 눈시울이 뜨거워진 것이다. 인간이 생존의 위기에서야 비로소 진정 사랑이 나오는 법인가?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버지, 그리고 아들, 딸이라는 핏줄의 생명력이 情을 이루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삶에 대한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뼈아프게 절규하는 함성으로 들려왔다.

우리는 情의 힘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의 힘은 정이다. 흉년이 들고 보릿고개를 맞으면 절대빈곤을 누구든지 당해야 했다. 끼니를 이을 쌀이 없다. 잡곡도 없다. 이 때, 어머니는 부엌으로 나가서 솥에 물을 붓고, 땔감나무로 불을 땐다. 연기를 굴뚝으로 내어보내는 것이다.

이웃 사람들이 볼 때, 만약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아니하면 쌀이 없어 밥을 굶는 집으로 알기 때문이다. 결국 이웃의 신세를 지기 싫은 것이다. 남의 신세를 지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베개들을 뒤진다. 농경사회에서는 베개 안에 좁쌀을 넣어서 베개를 사용하는 가정이 많았다. 오랫동안 베고 자던 베개를 하나 터뜨려서 거기서 나오는 좁쌀(조)로 밥을 짓는다. 그리고 상을 차린다. 누구를 위해서인가?

가족들은 밥을 먹지 않는다. 머슴들만 밥을 차려준다. 머슴은 남의 식구다. 세경(노임) 때문에 일하는 사람, 소위 노동자 위주이다. 그리고 주인집 식구는 물만 끓여서 간장을 타고 맹물만 마신다. 머슴이 일을 하고 주인식구는 심한 노동을 하지 않기에 밥을 굶는 것이다. 주인이 배부르고, 머슴이 배고프면 그 집은 봄에 밭에 씨 뿌릴 일꾼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되면 여름에 김을 맬 일꾼도, 가을에 추수할 일꾼도 없다.

결국 주인이 배부르고 노동자가 배고픈 사회는 미래가 없다.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주인이 며칠이고 굶어가면서 하루에 베개 하나씩 터뜨려서 자기들만 밥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머슴은 없다. 머슴은 뒷산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저녁 늦게 들어온다. 뒷산, 앞산 덫을 놓았다가 노루도 잡고, 토끼도 잡아서 돌아온다.

어떤 머슴은 칡을 베어 한 지게 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주인이 굶고 자기들에게 밥을 지어주는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 저녁에는 때 아닌 고기 잔치가 벌어지기도 한다. 여기에 갑(甲)질도 없다. 을(乙)질도 없다. 서로를 사랑하는 情만이 있을 뿐이다. 그럭저럭 보릿고개를 넘기고 나면 주인도, 종도, 양반도, 머슴도 없다. 한 식구다. 머슴은 스스로 주인에게 머리를 숙인다. 주인 역시 머슴이 머슴이 아니라 그 가정에 VIP로 여기며 소중히 존중해 준다. 여기에 행복이 있고, 사는 재미가 있다.

情은 풍요에서 나오지 아니한다. 넉넉하면 정이 더 있을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가난하고, 부족하고, 메말라야 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가을 농사가 끝이 났다. 벼를 베어서 볏가리를 쌓았다. 동생이 누워서 생각해 본다. 형 집에는 우리보다 식구가 더 많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보다 많은 식량이 필요할 것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볏가리가 있는 논으로 나갔다. 휘영청 달은 밝히 떠있다. 동생은 자기 볏가리에서 볏단을 뽑아 짊어지고 형님네 볏가리에 쌓기 시작했다.

한편 형님은 형님대로 곰곰이 생각한다. 동생의 아내가 곧 해산할 달도 다가오는데 아무래도 식량이 모자랄 것만 같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논으로 뛰어갔다. 자신의 볏가리로 달려가 볏단을 가득 어깨에 메고 동생의 볏가리로 가서 옮겨 놓았다. 그 때, 검은 그림자들은 만났다. 바로 동생인 것이다. 동생도 형님의 가정을 위하여 열심히 볏단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님은 동생을 생각하고, 동생은 형을 생각하였다.

이 아름다운 情은 두 사람의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형제애를 느꼈을 것이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다. 情이 문제이다. 서로 情으로 하나 된 가족은 행복으로 가득한 낙원을 이룰 것이다. 우리의 힘은 情이다. 서로가 편하고, 문제가 없을 때는 분열과 갈등과 서로의 다툼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사고가 나거나 불상사가 생기거나 극한 어려움을 겪는 사정이 발생되면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하나가 된다. 세월호의 사건을 보라.

세월호와 같은 불행이 다시는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세월호의 아픔으로 온 국민이 하나가 되고, 눈물을 흘리며 젊은 생의 떠남을 슬퍼하지 아니하였는가? 우리는 고난 이후에 더 강해지고, 슬픔이 올 때 더 힘이 생기며, 가난이나 어려움이 올 때, 눈물로 하나가 되는 情이 많은 민족이다. 그러므로 강하다. 세계 경제가 어렵다 해도 우리 경제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능히 극복해 나갈 수 있는 情이 있다. 하나가 된다. 힘이 생겨난다. 어려울수록 강하다. 情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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