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 윤대영 목사

최초의 인간의 분노는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 되었는가? 구약성서에서는 가인으로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다.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도 받으시지를 아니하신다. 그런데 동생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잘 받으신다. 이로 인하여 가인의 분노가 시작했다. ‘왜 나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시는가?’ 가인은 분명히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동생의 제사는 드릴 때마다 받으시니,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낄 것이며, 동생 아벨에 대해서는 질투가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드디어 죽여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가? 불평등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왜 나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시고, 동생의 제사는 받느냐’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면 분노가 일기 시작한다. 어느 개발도상국가를 방문 한 때가 있었다. 출입국관리소의 내국인들이 출입하는 출입구는 여러 곳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외국인의 출입구는 달랑 하나였다. 외국인들은 새로운 방문국이 낯설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다 출입구를 하나만 제공하였으니,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초조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에 어느 누구하나 불평은 하지 않았지만, 분노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다시는 이 나라를 방문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 우리가 사는 한국이라는 마을에 가장 큰 문제는 분노이다. 분노는 자기감정을 스스로 통제 못할 정도로 격해지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노를 해도 되는지, 참아야 하는지 구분조차 못하게 만든다. 감정이 과격하게 치달아 오른 나머지 결코 침범할 수 없는 부모님까지 살해를 하고, 나아가서 회사의 상사나 동료, 친구, 심지어는 공권력에까지 분노를 발하는 행동을 저지르고 만다.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이 한순간에 분출한 경우, 그가 했던 행동의 결과를 보고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범죄의 죄책감에 휩싸여 자탄(自彈)을 금치 못하는 광경을 많이 본다.

특히 분노하게 하는 또 하나의 원인 제공은 자꾸만 삶의 지위를 구분하여 보려고 하는 시각이다. 이를테면 갑(甲)과 을(乙)의 관계로 구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인간관계를 양분화해서 인식을 시키면 내가 ‘갑’이라고 하더라도 ‘을’에 속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자기 스스로 ‘을’에 속한다 생각하면 결국 분노의 감정에 원인제공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갑’이라고 자기 판단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누려야 할 “갑”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나 행사나 권익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되어 그 역시 분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나는 을이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무시당하고 소외감을 느끼며 사회나 가정에서 자신의 위치가 억눌린 상태이거나 자기 의사 없이 종속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불안감과 위축감에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분노케 하는 것이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시는 것은 아벨 때문이 아니다. 제사를 받고, 받지 아니하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다. 가인이 아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인이 자기 스스로를 ‘을’이라고 생각한 이후의 의식 때문이다. 아벨은 “갑”이나 “을”의 의식이 없다. 일상의 제사를 드렸을 뿐이다. 가인에 대한 비교의식도 없다.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도 아니다. 당연한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받는 관계일 뿐이다.

오늘의 감성시대에 사람들의 권리와 지위 그리고 역할, 그 사람의 직위, 소유나 지식, 외모, 권력 등 무엇을 가지고 “갑” 또는 “을”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는 그로 살아가야 하는 그의 길이 있고, 그의 소유와 역할에 대해 만족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여야 한다. 사람을 섬겨야 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갑”이라고 자처하는 책임의식을 갖는다면  “갑”도 “을”도 없는 사회가 된다. 이런 사회가 되어야 분노의 불길이 가슴에서 점화되지 아니할 것이다. 분노는 치유되어야 할 감정이다. 상한 마음이 분노의 용광로이다. 화산 같은 분노가 순간에 촉발하지 아니하려면 교양을 통해 겹겹이 인내를 길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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