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부천신문] 올해는 양의 해라고 한다. 짐승 중에 양처럼 온순한 짐승은 없을 것이다. 카자흐스탄에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그날 저녁 식사는 양고기를 대접하신다고 하며 자기가 기르던 양 한 마리를 잡는다고 하여 호기심이 있어서 양을 잡는 것을 직접 목격을 하였다.

양을 마치 자신의 손자를 안듯이 다정다감하게 안고 나왔다. 그리고 그리 크지 않는 칼로 양의 목을 땄다.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양은 마치 잠을 자듯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다음 절차는 양의 가죽을 벗기는 작업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각을 떴다. 끓인 가마솥에 넣어서 양고기를 삶는 것을 보았다. 양 한 마리가 죽어서 음식이 되었고, 그 양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졌다. 흔적이 없다. 양은 그 목자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나간 것이다.

목자가 털을 깎을 때도 마치 어머니가 딸의 머리를 빗을 때처럼 조용하다. 털을 다 깎인 양은 몇 차례 몸을 흔들고 난 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로 뛰어가는 것이다. 흔적도 없이 자신의 모습은 사라지지만, 자기의 모든 것을 자기를 길러준 목자에게 바치는 양의 흔적 없는 흔적이 초원을 가득 채운 것 같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어느 누가 자기의 묘비에 적은 글을 죽어서 읽어 볼 사람이 있을까? 위대한 화가, 음악가, 철학자, 정치인 등 불후의 명작이나 업적을 남기고간 사람들이 위대한 유산을 남기고 간다. 세계를 한손으로 쥐고 흔들 것 같이 위세를 떨치던 그 영웅들도 역사를 남기고 간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흐뭇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작 죽은 자는 자신의 작품이 죽은 후에 연주 되는 것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없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이름을 남겨 봤자 죽은 본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요즘은 한 자녀만 낳는 집이 많다. 그것도 만혼에 낳다보니 자녀가 ‘금이야 옥이야’ 이다. 부모들은 한 자녀의 시녀와 종이 되어 섬기며 자녀를 키운다. 잘 키워 보자는 취지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문제는 자녀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해 주는 것을 최상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본 경험이다. 백화점에서 어린 자녀가 아무리 자기가 원하는 상품을 사달라고 조르더라도 사 주지 않는 것을 보았다. 철저하게 자제력을 키워주고 자기를 통제하는 기능을 길러 주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을 간과해 버린다. 이로 인하여 정신질환 중에 하나인 자기 제어 불능이라는 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자기 감정제어가 불가능 하다 보니 분출되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분노는 증오를 낳고 증오는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음주를 하고 평소에 좋지 못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집을 자동차로 덮쳐서 인명 피해를 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고의로 방화를 하여 사람을 상해하고 재산상의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랑하는 부부사이에도 자제력을 잃고 막말을 퍼붓고 나면 평생 마음에 상처를 입혀서 가슴앓이를 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부모가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 유산분배 문제로 싸움을 하는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경우가 많다. 분노는 상처를 입힌다. 상처는 흔적으로 남는다. 징기스칸은 몽고의 영웅이자 신적 존재이다. 그가 남긴 아픈 흔적은 세계가 증오하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Hitler, Adolf)의 광기어린 전쟁은 지금도 인간이 극악무도 하면 얼마나 악해 지는가를 엿볼 수 있는 극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도 차출되어 출정하려던 병사가 일본이 항복하므로 결국은 목숨을 건졌다. 적어도 가미카제 특공대로 차출되어 출정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최선의 사람, 천황을 위해서 한 목숨이 죽는 것은 영광이라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자제력을 잃은 전쟁광 정신질환자의 탓이 아닌가? 지금도 일본의 총리는 2차세계대전의 전범을 영웅으로 섬기고 있다. 그리고 자신도 전범이 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고 군장으로 인한 신체적 장애우가 된 사람들 그리고 인격이 무너지고, 인권이 유린되어 고통 받게 하고, 찢어지고 깨어진 역사의 흔적을 남긴 사람들을 존중하고 자신도 따르겠다는 한심한 사람들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지척에 있다.

흔적도 없이 역사에 공헌하고 사라진 이름 없는 양 같은 사람들로 인하여 역사는 살아간다. 그러나 흔적을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역사는 상처를 입고 아파하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공헌한 훌륭한 사람일수록 ‘내가 죽은 후에 아예 묘지까지도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유언을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양의 해 양의 모범을 배우는 해로 삼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