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부천신문]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못한다. 걸어 다니기보다 뛰어다니기를 즐겨한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앞서가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고, 뒤에 따라가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뒤에 가는 아이는 앞서는 아이보다 체력이 약한 경우이다.

달리던 아이가 주저앉았다. 가쁜 숨을 고르고는 점점 멀어져 가는 아이에게 이렇게 소리를 치른다. “앞서 가는 도둑놈, 뒤에 가는 순사(순경)” 앞서 가는 아이는 못 들었는지 그냥 달려간다. 여기 짤막한 동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독소가 들어있다. 앞서 가는 아이에게 ‘너는 나보다 잘 달리는 구나. 대단하다.’ 승자에게 축하는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니면 자신이 힘이 부쳐서 달리지 못함에 대한 자기 체력의 약함을 시인하고 ‘나는 너보다 체력이 약해 달릴 수 없어’ 라고 자신의 패배를 시인은 하지 않고, 앞서 달린 아이 탓에 내가 이 달리기에서 졌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너는 도둑놈이다. 나는 순사(순경)라고 빗대어 노래한다는 것은 잘못된 의식에서 출발한 노랫가락이 아닐까?

이러한 의식을 어린아이시절부터 가지게 된 사람이 장성할 때는 이미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 자본주의 경제가 꽃피어 있는 중간지점에 서 있다.

자본주의는 무한 경쟁사회이다. 자신의 능력만큼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는 사회이다. 이것을 경제 정의로 채택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자, 나보다 더 지식을 많이 가진 자, 혹은 미모에 있어서나 가정의 행복까지 나보다 나은 사람은 모두 도둑으로 본다면 이것은 정당한 경쟁자가 가질 심상이 아니다.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살려면 승리자와 패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가능하다.

승자에게 패자가 꽃다발을 줄줄 알아야 하고, 패배한 이들에게 격려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왜 우리는 세계에서 행복 순위를 정하면 자꾸만 하위로 떨어질까? 행복감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다. 경제나 사회나 교육이나 정치나 이 모든 것은 외적이고, 객관적인 원인이기에 행복감에 약간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경제적으로는 뻔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아서 행복한 나라의 상위권으로 오르는 국가도 허다하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최우선 순위이다. 근래 언론이 이상한 새로운 상대적 구도를 만들고 있다. 갑(甲)과 을(乙)을 상대적 구조로 나누는 기사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

빈자와 부자 사이의 골은 깊은 데로 깊어져 있다. 이에 헤겔의 후예들 중에 포이에르바하(Ludwig (Andreas) Feuerbach)로부터 분배를 성장 보다 우선하는 사상을 싹터왔고,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사회와 된 것은 칼 막스(Karl Marx)에 의해서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결구조로 인류사회에 커다란 파도를 일으켰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의 대를 이은 구소련의 공산주의는 2차 대전을 겪으며 상처난 인류에게 매우 설득력 있는 논리였다. 그리고 소련의 2차 대전에서의 희생과 승리를 인하여 받아야 할 대가로 독일과 한국에 민족의 허리를 자르는 서독과 동독 그리고 북한과 남한으로 갈라놓으면서 갈라진 민족은 각각 다른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분배와 성장의 충동이었다.

분배는 매우 이성적이다. 그리고 성장은 본능적이다. 본능은 무한한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법이 허락하는 가능성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열어놓고, 시장 마당에서 끊임없이 채워갈 수 있지만, 분배는 이데올로기의 학습을 통한 이성적 결단을 요구하고 끊임없이 소유하고, 욕망을 채우려는 개인의 본능적 욕구를 억제하고, 공동생산 공동 분배하는 공산주의 사회질서는 가면 갈수록 힘을 잃었다. 지금의 분배주의는 사실 붕괴되었다. 무한 경쟁시대, 글로벌시대이다. 지금은 패자가 승자에게, 빈자가 가진 자를 향하여 자기를 기준으로 더 나은 자에게 도둑놈이라고 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에 비롯된 패자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이웃이 잘됨이 나의 것을 박탈하여 잘되었다는 심상으로 상대박탈감으로 인한 증오, 시기, 질투, 법으로 강제분배를 꿈꾸며, 정당을 만들고,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는 생각이 다원주의 사회의 다양성에 다시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다.

강제로(법 및 여론) 분배가 아니라, 가진가가 스스로 분배 해주는 사회, 가진 자는 승리감만 소유하고 승리로 인한 전리품은 모두 되돌려 주는 사회가 이룩되어야 도둑놈으로 불리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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