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부천신문] 나의 조국 이 땅은 붉다. 천 번 가까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며 그때마다 피붙이 아들을 보내며 두 다리 뻗치고 가슴에서 회울음 토하며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 통곡하던 어머니들의 손바닥에서 흘린 피와 맞은 땅바닥이 멍이 들어 붉게 변했다.

얼굴한번 보지 않고 연지 곤지 찍고 시집와서 아침인지 저녁인지 밤낮을 느끼지 못하고 서방님만 섬기던 어느 날, 나라에서 영장이 나왔다며 “전선으로 가야한다.”고 말 한마디 던진 후, 침묵만 지키던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간이역 플랫 홈에서 만삭된 아이를 배에 품고, 산이 움직이듯 서서히 떠나가는 징병열차를 따라 달리다 쓰려져 눈물로 땅을 적시던 그 땅, 바로 나의 조국이다.

학도병이라고 했던가? 아직 국가가 무엇인지, 나라가 무엇인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적이 누구인지, 모르는 열여섯 살 난 젊은이에게 자기 키 보다 더 크고 무거운 총을 메게 하고, 방아쇠 당기는 연습을 하다가 말고 발 디딜 틈새 없이 쑤셔 박고, “쏘라면 쏘는 거야.” 말 한마디만 믿고 고개 숙이고 있노라면 순간 순간마다 가슴 뚫는 듯한 총소리가 머리카락을 스치는데, 쏘라면 쏘란 소리에 마구잡이 방아쇠를 당겼으나, 누가 누구를 향하여 쏜 총인지, 누가 나의 가슴을 향해 총을 쏘는지, 알 수 없는 혼비백산한 상황 끝에 온몸 오랏줄에 묶여 먹지도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끌려간 낯선 하늘 차가운 대지에 홀로 남겨 놓고 조국은 말없이 침묵만 지킨 날이 얼마나 있는가?

나의 조국 이 땅은 흙이 아니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의 몸 가루이다. 지금도 조국의 가슴인 땅을 헤치면 철모를 쓰고 누워 앙상한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 가지런히 가슴뼈를 드러낸 채 그토록 살기 위해 달렸던, 적인지, 이웃인지 쏘라니 쏘아댔던 두 팔, 그리고 총이라는 이질적인 쇠붙이가 그의 가슴위에 얹혀있는 유해를 볼 수가 있다. 이 땅은 피 밭이다. 내 땅의 가치는 피 가치 보다 더 값지다. 고조선을 비롯하여 6.25가 있었던 최근까지 수많은 피로 물들어져 오늘의 땅에 고여 응고된 것이다. 나의 조국의 피 밭에서 씨를 뿌리고, 곡식을 키워 밥을 먹지만 쌀은 쌀이로되 그 쌀 속에는 선조의 분골 희생이 들어있고, 그 식단에 놓여있는 생명체에는 조상의 얼이 함께 배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가옥도 피의 강에 띄운 조각배이다. 땅 속에 기초를 세우고, 마천루를 세우지만, 지금도 조국을 위해 가장 낮은 자리에 깊이깊이 흐르고 흘러 들어가 조국의 앞날을 위해서 기도하는 혼백이 그의 어깨와 어깨를 마주하여 버티어주므로 하늘 높이 마천루가 세워지는 것이다. 비석에 누가 언제 어느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이름을 새겨놓은 묘비명 앞에 희생을 망각함이 얼굴을 붉히게 한다.

육체를 가진 인간들은 욕망과 야욕, 빼앗겠다, 빼앗기지 않겠다는 악령의 광란스러운 쓰나미에 매몰된 사람들의 생존경쟁을 보며 흙이 되고 정기가 된 선열들이 지금은 하늘을 향해 절규하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산산조각 난 먼지로 구겨져 있어야 하나?’ 한스러움을 조용한 명상 중에 들을 수가 있다. 이 땅이 나의 조국이라며 사는 생은 스스로 내가 산다 말할 수 없다.

선열의 희생의 피가 나를 살게 하고 있다. 너를 너로 살게 된 그 뿌리는 바로, 너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뿌려놓은 조각난 생명에 의해 네가 너 됨을 알고 살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내 땅이라 말하지 말라. 내 땅이 없다. 피 값을 지불한 피 주인의 땅이다. 나는 모른다고 할 수 있으나. 역사도 하늘도 알고, 땅이 진동하도록 외치고 있다. 이 땅은 우리의 땅이다. 누구도 내 땅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 땅은 내 땅이 아니요, 그대들의 땅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엄연한 핏줄기가 있다. 울 넘어 달님께 나직이 물어보라. 어느 집, 어느 댁이 이 땅의 피를 몸에 붓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 땅의 흙은 흙이 아니라 진토 된 골분이다. 포악자들이 태풍처럼 밀려와 사지백체 해체하고 산 자를 끌고 간 원한의 사건이 얼마였으며, 바다를 건너와 대륙을 점하겠다고 장담하고 잔혹하게 주인의 가슴에까지 칼질을 하고, 인재를 죽이기 위해 사기 말뚝을 박은 흡혈귀 같은 악령의 피바람 춤이 얼마였던가? 그래도 이 땅은 영원하다. 또 다시 그러한 비극은 없을 것이다.

지난날의 암흑에는 눈을 감고, 오늘의 빛을 용서의 두 손으로 하늘을 향한다. 한에 매여 살기보다 한줄기 희망의 춤을 추기를 바라는 천성을 가진 하늘 사람들이 있으매, 조상의 등을 밟고 더 높이, 더 넓게, 뻗어 나갈 것이고 줄기가 지구를 덮고, 우주를 가슴에 품을 것이다. 이 땅은 붉다. 그 땅에 피어나는 생명은 모두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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