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부천신문] 이 땅에 태어나서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성격과 개성, 그리고 인격으로 살아가고 있다. 생명의 존재 자체가 그러하듯 존재하기 위해서는 서로 경쟁을 하게 되어 있고, 살다보면 저마다의 방법과 특징, 능력으로 자기 삶을 꾸려가기 마련이다.

이러한 삶의 전선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소간 실수와 잘못을 범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실수와 잘못은 피붙이인 부모와 친척, 그리고 형제, 친구, 함께 더불어 가까이 사는 사람들 사이 일수록 빈번히 일어난다. 아예 관계가 없는 사람이야 이러한 실수와 범죄가 일어날 수가 없다.

안타까운 것은 연로하신 노인들이 친자녀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소식은 인간의 가치가 절하되는 듯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렇게 누구든지 부딪히며 살다보면 죄를 짓기 마련이다.

그런데 성서 창세기에는 요셉이란 사람이 등장한다. 요셉은 그의 주인의 부인으로부터 유혹을 받는다. 그는 그 유혹을 뿌리친다. 그의 생각은 그 부인의 유혹에 넘어가면 부인에게 범죄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섬기는 주인에게도 범죄 하는 행위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죄를 범한다고 생각을 했다. 하나님의 계명에 남의 아내에 대한 관계는 범죄라고 말씀하였으며, 하나님께 범죄 함이 가장 근본적이고, 큰 범죄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 유혹에서 벗어나 범죄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오히려 음모에 휘말려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용서가 서로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사소하고 큰 죄로 인하여 징벌적 의식으로 고소를 하기도 하고, 법정에서 다투기도 한다. 그러나 죄를 검증하고, 그 죄에 해당하는 유무죄를 가리는 법관마저 완벽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기 자신의 입장으로 토로하고, 진실한 대화를 통하여 화해하고, 서로 이해하며 용서하는 것이 가장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길일 것이다. 성숙한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고, 양해를 구하고, 겸손히 자기 자신을 먼저 낮추는 것이 화해와 용서를 만들어가는 지름길이다. 미성숙할수록 자기의 자존심에 집착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하려고 한다.

어린아이들이 장난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면서 양보하는 것을 보았는가? 결코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커다란 용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두 손에 못이 박히고, 두 발에 못이 박혔다. 이마에는 가시 면류관이 쓰이고, 창으로 허리를 찔린 그 고통은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처참한 사형을 받았다.

그 분은 결코 자기 죄 때문에 이러한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그 분은 선언하셨다. ‘내가 너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노라. 내가 너희를 향한 이 희생은 하나님의 사랑이다.’라고 외쳤다.

이 소식은 사도들과 믿는 자들을 통하여 온 세계에 전해졌다. 그리고 믿고, 용서를 받은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믿지 않고 이 용서의 선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이 용서의 선언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기가 지은 죄를 자기가 용서를 못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고백한다. ‘나는 지금까지 지은 죄를 용서함 받았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다시 문득문득 자기가 지은 죄가 생각나서 죄책감에 억눌려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자기가 자기를 용서 못하는 것이다. 갑자기 지난날의 실수, 지난날의 잘못됨이 떠오르면서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오르며, 자기 자존감을 상실하고, 대인기피증 증세를 보이고, ‘나는 죄인이다. 나는 나의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오히려 스스로 벗어던진 죄를 다시 뒤집어쓰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무서운 공포와 자학적 번뇌를 하는 사람도 많다. ‘은혜로 용서함 받는다’는 은총에 대해 부정하며, 죄사함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용서의 선포도 중요하고, 또한 인간과 인간 사이에 피해를 준 자가 있으면 피해를 본 자가 용서하는 것도 용서다. 그러나 이런 모든 용서에 선행되어야 할 용서는 자기가 자기 죄를 용서해야 한다. 이 용서를 하자면 자기 죄를 시인하고, 회개가 있어야 한다. ‘나는 잘못했습니다. 회개합니다.’란 자기의 죄에 대한 시인과 용서를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회개 없는 용서는 용서가 아닌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먼저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회개 없는 용서는 용서의 효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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