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권 박사의 도강칼럼③

주석 : 삶(Ankh;)의 지평선(Akhet;)를 바라보는 두 사자(haty) 중 하나는 반복적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보고, 다른 하나는 언제나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부천신문] 고대 이집트인들의 세계관은 서로 싸우면서 닮아가는 근대적 시뮬라크르(simulacre) 세계관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시뮬라크르의 세계관에는 절대적인 원리를 표상하는 일자적 신관(神觀)만 있어, 침묵 속에 존재하는 다양성 혹은 이단성이 배제된다.

‘일자적 신관’과는 대조적으로, 고대이집트의 ‘다수적 신관’에서는 신(Neter;)은 단지 “보편성을 갖는 어떤 원인적 능력들(puissances)”이다. 그래서 그들의 신은 어떤 원리로, 어떤 행위자로, 어떤 기능으로 다양하게 재현될 수 있다. 다만, 그들은 신들을 천상계(pet), 지상계(ta), 중간계(douat)라는 세 범주로 구분할 뿐이다.

천상계는 절대적 원리, 부동의 원리 등으로 재현되는 서구적 관념과는 무관하다. 천상계는 다수(multiple)의 원인적 역능들, 혹은 영혼적 능력들, 형상을 부여하는 것과 그리고 계기적으로 육화시킬 수 있는 것과 연관된다. 이것이 모든 혼(Ba;)의 원천이다.

중간계(Douat)는 낮과 밤의 사이, 즉 일출과 일몰 무렵을 말한다. 이는 원인적 능력의 추상세계와 자연의 현상세계 사이에 있는 생성과 순환의 세계이다. 중간계의 한편은 천상계의 가상적 가능성들이 지상의 생물에 인입시키는 “능산적 자연”, 지혜의 신 토트(Thot)의 세계다. 다른 한편은 사자(死者)를 심판하는 오지리스(Osiris)의 세계다.

지상계는 중간계에서 이미 정해진 형태들을 개체적 특성에 부과하는 “소산적 자연”이다. 그래서 지상계는 형상과 이데아가 육화되는 물질(Khet;)계이다. 지상계도 중간계와 마찬가지로 한편으로는 불에 달궈 물질을 제작하는 대장장이의 신 프타(Ptah)가 지배하는 세계가 있고, 식물의 순환적 삶을 주관하는 오지리스의 세계가 있다.

천상계의 네테르()는 “전혀 태어난 적이 없는” 감춰진 신 아몬(Amon;), 태양의 신 라(Ra;), 라의 심장 호루스(Horus;),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네이트(Neith;) 신 등이 있다. 참고로, 성경 속의 야훼는 네이트 신의 담화를 사칭한다.

중간계의 네테르는 아침과 저녁 무렵의 빛을 상징하는 아툼(Atoum;), 360일의 나머지 5일을 주관하는 호루스의 자식들로 재현되는 네테들, 별자리를 주관하는 하토르(Hathor;)와 누트(Nout;), 하늘과 땅의 진정한 중간자, 호루스의 메신저, 프타의 혀로 재현되는 지혜의 신 토트(Thot;), 저승사자 아누비스(Anubis;) 등이 있다.

지상계의 네테르는 조물주 프타(Ptah;), 천상의 에너지의 응축자 아몬-민(Amon-Min;), 분열과 경직의 신 세트(Seth;), 신생아에게 매력을 부여하는 크눔(Khnoum;), 모성의 신 무트(Mout;), 풍요의 신 아페트(Apet;), 모순의 신 세르케트(Serket;)등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계도 세 상태로 존재한다. 천상계에서는 혼(魂;ba), 중간계에서는 넋(魄;ka), 지상계에서는 령(靈;akh)의 상태로 존재한다. 지상계에서의 靈는 사후(死後)에 평가되는데, 이는 영혼의 그림자(khaibit)가 빛과 대립되지 않고 빛의 실체로 재평가될 때 다시 육화될 수 있는 불멸성과 관계한다.

침묵의 문을 지키는 두 사자(haty) 중 서쪽의 사자는 넋(ka)이 피조물 혹은 담화로 육화(肉化)(djet;)되는 혼령(akh)을 살피고, 반면 동쪽의 사자는 넋(ka)이 빛의 존재로 다시 환생할 영혼(ba)을 살핀다. 유대인의 카발라(kabballah)에서는 ka(물질의식의 행동계; Nefesh), ba(감정의식의 형성계;Ruach), akh(지적능력의 창조계; Neshamah), hor-akh(총체적 삶의 발광계;Haya)로 도식화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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