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부천신문] 지난 4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한국 남성 20~59세의 정서 조사를 한 바가 있다. 조사에 따르면 36%는 “나는 행복하지 않다.”라고 응답했다. 대상자 중 3분의 1 정도가 불행하다는 의미이다.

전체 대상자 중 28%는 우울증, 21%는 불안장애를 동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조절장애로 인해 전문가와 상담이 필요한 대상자도 11% 수준이었다. 결국 불행하고 슬프게 살아가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 이유는 경제적 침체를 가장 우선순위로 꼽았고,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 같은 사건 사고를 꼽았다.

행복의 조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경제이다. 배가 고프면 눈물이 난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부터 넉넉히 살아보았는가? 지금은 2만달러가 넘는 GDP을 향유하고 있다. 그런데 왜 불행해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은혜”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마음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60년대, 70년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도 못한 체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이나 산업현장에서 하루 20시간씩 일하면서 먹고 잘 수만 있다면 일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보수는 기술습득이었다. 배고픔을 채울 수 없어 점심때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살았다. 그러나 항상 고마워했다. 먼저 부모님의 은혜였다. 소액의 노동의 보수가 지급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은 부모님이다. 어머니, 아버지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먹지 않고, 입지 못해도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에 꼬박꼬박 작은 돈이지만 송금을 했다. 우체국에서 소액환으로 바꾸어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이때 반드시 부모님께 감사와 안부를 묻는 편지를 써서 보낸다.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다. 눈물로 부치는 편지였다. 편지를 보내고 우체국을 나서는 젊은이의 마음은 자부심과 보람을 한꺼번에 느끼며 행복해 했다.

군에서 겪은 일이다. 제대 날이 가까워 오면 올수록 불안해하는 친구가 있었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그가 군대 매점에 앉아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가만히 다가가 “왜 혼자 소주를 마시느냐?”고 물었다. 그는 드디어 진실한 말 한마디가 나왔다. “어디가면 옷 주고, 밥 주고 재워주느냐? 군에 있는 동안 제일 행복했는데, 막상 제대하려니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그때 그의 눈에는 군에 대한 감사의 표정이 눈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부유하고 가난한 것은 인류가 사는 이 지구촌에 항상 상존하는 현상이다.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시기가 GDP 만불을 기점해서이다. 내가 못사는 것은 네가 잘 살기 때문이다. 내가 꼴지를 한 것은 성적이 좋은 우등생 때문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는 시기가 이때다. 저소득 국가는 모두가 못 산다. 다 부족하게 살아가고 있다. 보릿고개 때는 부자도 어려웠다.

그래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아니하며 잘사는 이웃에 대한 분노나 불공평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절대빈곤을 느끼면서도 타인을 향하여 증오하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배려한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면 GDP는 올랐다고 하지만 소수의 재벌들이 차지하는 %가 높다. 결국 소득분배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의 느낌이 우리로 하여금 슬프게 하는 것이다. 설상 슬퍼하거나 불행해 하는 사람은 그 자신만 아플 뿐이다. 주어진 현실을 긍정하고 나의 마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구원론이 은혜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다. 이 얼마나 큰 은혜로운 사건인가. 그리고 예수님은 죄가 없지만 죄인들을 위해서 억울한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다만 이 사랑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성서에는 예수님의 이 큰 사랑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자세는 항상 기뻐하게 되고, 범사가 감사해야 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은혜의 발견” 여기서부터 행복의 씨앗은 움을 틔우고 줄기가 자라게 될 것이다.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은 없다. 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나의 보편적 일상 속에서 은혜를 재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흥분하던 그때 서해 연평 앞바다에서 참수리 357호는 NLL 을 넘어온 북한의 적과 교전이 있었다. 이 사건이 영화화 되어 상영되고 있다.

나의 일상이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 나의 일상을 위해 땀 흘리고 있고, 피 흘리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일상은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다. 내가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한 것이다. 은혜만 발견할 수 있다면 누구든 행복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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