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부천신문] 시골에는 해가 지면 사방에 어두움이 드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는 불을 켜지 않는다. 해질 녘 농사일을 끝내고 마당을 쓱쓱 빗자루로 쓸어내고 멍석을 깐다. 멍석 머리맡에는 흙과 돌로 쌓은 부엌 아궁이 하나가 있다. 굴뚝은 양철을 말아 꽂은 것이 고작이다. 거기에 솥을 걸고 불을 지피면 낮에 딴 옥수수며 감자를 쪄 낸다. 밤이 되면 밤모기들이 사람의 피가 그리워 날아든다.

멍석 아래쪽에는 모깃불을 피운다. 마르지 않는 풀이랑 쑥대를 올려놓는다. 불은 화들짝 타지 않고 연기만 자욱하게 피워 올린다. 멍석에는 앉아 있기가 어렵다. 모깃불을 피워서 날아오는 연기가 코와 눈을 맵게 하여 어쩔 수 없이 누워 있어야 한다. 누우면 하늘이 천정이 되고, 천정 가득히 매달린 별들은 사색하기에 알맞은 조도로 빛을 비추어 준다.

할아버지가 머리맡에 오셔서 않으신다. 쉰 냄새가 코를 자극하지만 싫지 않다. “할아버지~ 이야기 한 자락 해 주세요.” 할아버지는 한참 잠자코 계시다가 나를 황홀한 상상의 나라로 이끌어 가신다. 할아버지도 할아버지께 들으셨다는 전제하에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듯이 말씀 하신다.

“어느 날 이른 새벽 논에 물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신 할아버지는 문을 열고 앞마루에 앉았다. 안개가 너무 짙게 끼어 있어 조금만 기다렸다가 논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이 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솔솔 바람이 불면서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더니 멀지 않는 공터에 수백 년도 넘은 듯한 고목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꼭대기 가지에 무언가 푸드득 푸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고목 꼭대기 가지에서 한 마리의 솔개가 날아보려고 날개 짓을 하지만 날아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자세히 보니, 솔개의 다리에는 아주 질긴 끈이 묶여 있었고, 끈의 끝에는 쇠 젓가락이 묶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솔개는 어느 사냥꾼이 기르는 솔개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냥하는 사람이 솔개를 사육하던 것이다. 그런데 어젯밤 솔개는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모처럼 얻은 자유를 마음껏 누리다가 피곤한 나머지 고목나무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날아오르려고 하자 날아오를 수가 없었다. 솔개의 발에 묶어 둔 끈과 젓가락이 나뭇가지에 얽혀 날아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꽤 오랜 시간 날개 짓을 하다가 그만 지쳐 조용해진 모양이다.

그런데 그 고목나무의 아래에서 독사 한 마리가 그 솔개를 보았던 것이다. 뱀은 먹잇감을 보고 군침을 흘리며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었다. 뱀은 솔개 가까이 가서 솔개의 꼬리부터 감아 온몸을 옭아매면서 갑자기 머리를 들어 입을 크게 벌리고 솔개의 머리를 삼키려고 했다. 그런데 솔개가 오히려 독사의 눈을 그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이다. 뱀은 갑자기 당한 습격에 솔개를 조였던 몸을 풀고 늘어졌다.

솔개는 뾰쪽하고 칼날 같은 발로 뱀을 꽉 잡고 뱀의 머리를 쪼고 또 쪼았다. 드디어 뱀은 온몸을 늘어뜨리고 꿈틀꿈틀 할 뿐 공격을 포기하고 기력을 잃어갔다. 솔개는 뱀의 머리부터 시작하여 꼬리까지 온 몸을 나무 꼭대기에서 다 삼키는 것이다. 얼마나 흘렸을까? 기력을 차린 솔개는 힘을 다해 날개 짓을 하여 하늘로 날아오르자 발에 묵인 끈이 끊어지고 솔개는 멀고 먼 자유를 향해 날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갓 익은 옥수수와 감자를 엄마는 상에 차려 나오셨고 꿀맛 같은 야참은 지금도 침이 넘어가게 한다. 

이야기는 나의 가슴에 심어졌다. 인생을 살다보면 위기가 온다. 그리고 그 위기 때 반드시 공격하는 적이 있다. 내가 강할 때는 적도 없다. 면역이 떨어질 때 질병이 오듯이 위기를 맞아 연명하기도 어려운 때에 원수는 삼키려고 공격해 온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네가 있어 축복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고 위기를 넘기리라. 원수 너는 하늘이 내린 보약이다”라고 생각하고 믿음을 가지고 대처한다. 이때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의 마지막에 하늘로 힘차게 날아가는 솔개처럼 위기를 극복하여 성공으로 비상하곤 했다. 그래서 위기는 기회이다. 고난은 축복이다. 내가 약할 때 강해진다. 나의 원수는 나의 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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