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권 박사의 도강칼럼⑫

[부천신문] 위의 그림은 중간계에서 망자의 남녀가 저승의 신 오지리스를 경배한다. 나의 관심은 두 남녀와 오지리스신 사이에 있는 정원수다.

천상의 여신 누트(Nout)가 12그루의 종려나무와 4그루의 야자수로 변신하여 지키고 있는 물은 과연 어떤 물일까?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망각의 물 레테(Lethe)일까? 아니면 기억의 물 므네모시네(Mnemosyne)일까? 과연 그것은 어떤 성질일까?

오지리스(Osiris) 뒤에 서있는 신은 마트(Maat)인데, 그의 깃털이 공기의 신 슈(Shou;)처럼 정원에 바람을 일으키면 마치 손으로 정원수를 젖는 것처럼 파동이 일어난다. 혹시 그 파동일까? 아니면, 정원수에서 손을 빼면 물방울이 떨어진다. 혹시 그 입자일까?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상형문자로 표시하면, 입자성은 올빼미(M)고, 파동성은 물결(N)이다.

그런데 상형문자의 세계에서는, 양자물리학에는 없는 둘 사이의 관계를 인과적으로 설명한다. 원인적 성질은 파동성이고 결과적 성질은 입자성이다. 하지만, 이것을 직접 연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N()은 불의 성분이고, M(혹은)은 물의 성분이기 때문이다.

불의 성분에서 N의 결과는 S(혹은)고, 물의 성분에서 M의 원인은 H(혹은 )다. 이들의 우주 기원도 상이하다. 물은 오리온자리의 삼태성(오지리스신 Osir혹은)에서, 그리고 불은 처녀자리의 일등성(네이트신 Neit혹은)에서 연원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과 우리문화권의 기문둔갑술(奇門遁甲術)과 그 상징이 같다는 점이다. 기문에서 오리온자리는 壬水로, 甲辰壬을 중궁(中宮)에 배치해야 둔갑술이 통한다. 이를 운명론으로 푼 것이 육임(六壬)인데, 처녀좌의 일등성은 角宿로 지지(地支)로는 巳火이다. 이와 같이 두 문명권은 사물의 운동과 변이를 물과 불의 관계로 푼다.

위 그림에서는 “존재의 영속성”을 물에서 찾는다. 천연탄산수처럼 빛()을 보호()하는 물 때문에 더욱 그렇다. 천연탄산수(HSMN)는 시원적 물(H)에 가스가 발생하여 불처럼 수직운동(S)하고, 물방울 입자(M)가 떠올라 정원수에 파장(N)이 생긴다.

그래서 중간계(Douat)의 생명수가 지상계로 강림하여 천연탄산수(HSMN)가 된다. 그것이 몸에 좋다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

탄산수의 비밀은 이를 구성하는 문자에 있다. 이 문자들은 모두 이중성을 갖는다. ①순수 에너지()는 모든 형태의 원인으로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뉜다. 천상계에서는 네이트의 불로, 지상계에서는 프타흐의 불로 나타난다.

②시원적 물()은 유전자처럼 실체에 등록된 시원적 기능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고, 생물적 실체(substance)와 합치되도록 관리할 것을 요구하는 물의 실체이다.

③시원적 결과로써의 불(S)의 긍정성은 호루스(Horus)신과 연관되어 수직적인 문자()로 표현하고, 그것의 부정성은 세트(Seth)신과 연관되어 수평적인 문자()로 표현한다.

그런데 불이 네이트신의 화살()처럼 교차되면, 불의 부정성과 긍정성이 서로 중화되고 시원적 원인으로써의 불 혹은 무시간적인 불, 즉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할 불로써 전화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의지”라는 새로운 차원의 불이다. 그것과 함께 마침내 시간의 역사가 열린다.

시간의 역사는 우주의 변이운동의 역사이다. 빛과 어둠, 열기와 냉기, 팽창과 수축, 상승과 하강 등 이중적 운동의 역사다. 시간은, 한편으로는 인간 의지와 연관되기에 상대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주의 운동이 한 순간에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아서 존재한다.

그래서 지상계의 생명체들은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 경험 때문에 싸운다. 싸우면 닮고 닮으면 지친다. 그 때 필요한 것이 탄산수다. 비록 영혼의 갈증은 남아 있더라도 그것의 해소는 언제나 대중적이다. 마치 불의 파동처럼 서로 타오르듯이, 혹은 물의 입자처럼 서로 결합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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