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부천신문] 경북 봉화는 청정고장이다. 읍내에서 20여분 거리에 오전약수터가 있다. 보부상이 처음 발견했다는 이곳의 약수 맛은 중탄산수이다. 심심찮게 그 심산유곡을 찾는 것은 약수도 약수이거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맑고 신선한 공기와 아직도 처녀림 같은 순수한 수풀이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된다.

약수터 앞으로 이사 온지 25년이 넘은 아주머니와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억눌린 과거사를 누르고 있음이 답답한 모양이다. 묻지 않는 이야기를 실타래처럼 풀어 내놓는다. 50여 년 전 경남 김해에서 중신(중매)을 선 사람의 속임수로 이곳 봉화로 시집을 왔단다.

먹을 것이 없어 하루하루 끼니 잇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왔단다. 시어머니는 가난한 삶 때문인지 며느리를 학대하기 시작했고, 꼬집고,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것은 보통예사였을 정도로 구타를 하기도 했단다. 몇 년이 지나 친정을 갔다. 밤이 새도록 이 고단한 아픈 시집살이를 더 할 수 없다고 사정을 했으나, 친정아버지는 그 집 귀신이 되었으니 그 집 가서 맞아 죽어라고 딸을 문밖으로 내 쫓았다고 한다.

시부모가 그토록 호랑이처럼 고통을 주면 남편이라도 위로를 해주면 좋으련만 오히려 남편은 자기 부모님 편을 들어 아내를 함께 학대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도 자녀가 태어나 삼형제를 키웠는데, 될 수 있으면 자녀를 적게 낳으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고 했다. 이젠 자녀들이 다 장성하여 도회지로 가서 산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새 시어머니가 생겨났다고 한다. 바로 며느리들이 명절이 되면 아들과 손자와 함께 집으로 온다고 한다. 시집에 오는 시간부터 까닭 없이 얼굴은 굳어있고, 저마다 며느리들이 서로 아프다고 울상을 짓는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들이 어머니 우리가 식사준비를 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시어머니께 구타당하고, 멱살 잡히며, 머리채 잡아당기던 때보다 속에서 불이 터져 나와 울화가 치민하고 한다.

아예 자녀들이 오기 전에 추석 때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아들 가족이 먹을 반찬까지 모두 준비를 하고, 추석 당일은 데워서 먹기만 하도록 준비를 해 놓는다고 한다. 모든 반찬과 과일과 식량을 싸서 보낸다. 그래도 각자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인사 한번 없고, 아예 아들집으로 방문한다는 것은 치외법권 지역을 침해 하는 것 같아 엄두를 내지도 못한다고 했다. 차라리 옛 시어머니의 학대가 오히려 견디기 쉽다고 했다.

세월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탄을 했다. 추석이 무섭다고 했다. 그렇다고 오지 않으면 손자손녀가 눈에 밟혀서 쓸쓸해진다고 했다. 아주머니의 얘기를 다 들어주고, 돌아오는 길에 충주에서 멀지 않는 온천에 들렀다. 그 온천은 섭씨 23℃의 시원한 탄산온천이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마냥 한 시간도 보내는 사람도 있다. 바로 옆자리에 올해 73세이신 노인이 심심한지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하기야 물속에 들어앉아 하시는 말씀을 들어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젊은 시절은 자그마한 사업을 했다고 했다. 그 당시는 공무원도 할 수 있었지만 따분해 보여서 사업을 하였는데 중년이 넘고 보니 차라리 공무원이 될 걸 후회도 되었다고 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몇 일전 있었던 사연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즘 시장에 햇사과가 출하되었길래 큰 며느리가 생각되어 사과 한 상자를 사서 아들집으로 갔다고 했다. 아파트 번호를 현관에서 눌렀다고 한다. 낯익은 며느리의 음성이 들려와 “나야”라고 대답을 하자. 대뜸 “왜 오셨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묻길래 “시장에 햇사과가 나왔기에 한 상자 가지고 왔다.”라고 하자 “그냥 가져가세요. 사과 많이 있어요. 아버님이나 잡수시죠?”라고 하고 인터폰을 뚝 끊어버리는 며느리의 행동에 다시 누를까 생각하다가 관리하는 아저씨에게 우리 아들이 돌아오거든 이 사과 가지고 올라가라고 부탁을 하고 돌아섰다고 한다.

작년 추석 때도 제사를 드린다고 두 형제가 가족들과 함께 왔다. 그러나 추석을 지나고 이 할아버지의 아내는 보름을 앓아누웠다고 한다. 설거지는 아들들이 하고, 음식은 시어머니가 도맡아 했다. 청소는 할아버지가 담당을 했다고 한다. 자녀들이 모두 떠나간 후 돌아오는 소문은 시집에 가서 머슴처럼 고생만 하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만든 추석인가? 추석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두 어르신의 말씀을 모두 인정할 수 없는 듯하다. 그러나 오늘의 명절의 풍속도는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두 날개를 가진 존재만 하늘을 나를 수 있다. 역사와 미래 두 날개가 함께 날개 짓을 하여야 한다. 물론 시집과 친정 두 날개가 함께 날개 짓을 하여야 날수 있다. 하늘 높이 말이다.

윤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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