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부천신문] 겨우 제 발로 걷기 시작하여 풀 섶을 걸어보던 유아시절에 가장 먼저 집요하게 나를 사랑한다고 메달리던 님의 이름은 도둑가시였다.

누구든지 그를 만나 보았을 것이다. 뾰족한 입술을 내밀며 어느 사이 양말이나 바지나 저고리에 거침없이 사랑의 고백을 하며 찰싹 붙어있던 검은 장갑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도둑가시(도둑가시풀, 도깨비바늘)는 항상 사람들로 하여금 버림받아 손가락에 꼭 잡혀 버려지곤 했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흘러도 아직도 풀숲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정열의 입술을 내밀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온 저고리에 심지어는 모자에도 사랑의 고백의 입맞춤을 정열적으로 하는 그를 보며 왠지 이젠 반갑고, 고맙고, 오래된 옛 친구를 만난 듯한 마음이다. 

한참동안 따가움을 참고 그냥 두었다. 세월이 얼마가 흘렀는데 너는 내가 아기 시절에  나를 향한 사랑의 고백을 지금도 변함없이 하고 있구나. 그 애원을 지금 반세기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정열적으로 하고 있는 도둑가시 너는 어쩜 이 시대에 가장 변함없는 사랑의 화신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가을 시골엔 대추가 검붉은 얼굴을 하고 가지가 찢어지게 메달려 있고, 하늘 높이 가슴을 열고 서 있는 감나무에는 헤일 수 없이 수많은 감들이 저마다의 숫처녀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다. 사과 그리고 배 할 것 없이 풍만한 가슴을 내밀고 있다. 한가로이 잠자리는 가느다란 울타리 가지 끝에 아슬아슬 졸고 있다.

햇살은 바다를 이루고 있는 벼 위에 자기 몸을 가루로 만들어 잘게 쪼개어 금빛을 뿌려 놓고 있다. 온통 저마다의 열매를 내어주고 있다. 자기 가슴에만 안으려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고 있다. 자기 육체를 찢어 버리고 짙은 갈색의 생명을 빠꼼이 내미는 밤송이도 아낌없이 가져가라고 고함을 친다. 밭고랑 마다 땅을 파헤치고 나온 고구마가 나신을 송두리째 가마니에 담기고 있다. 역시 드림에 만족을 즐기고 있다.

농부가 거두어줌에 환희의 몸을 맡기고 있다. 가을은 주는 이들로 가득하다. 받고도 부족하고, 거두어 들여도 손해라고 투덜대며 수고 없이 그릇마다 가득가득 담으면서 한숨을 쉬는 것은 파란 하늘 아래 사람뿐이다. 올해는 비가 제대로 오지 않았다. 저수지 마다 빈 바닥 속살을 내밀고 있다. 이렇게 가물다가 보면 올 가을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던 농심의 근심과는 달리 또 풍성한 가을을 맞는다.

조용히 눈을 감고 빈 마음으로 그저 주어지는 것들로 채워보라. 명상을 하는 순간에도 쉼이 없이 인간은 숨을 빨아 들이쉬고 있다. 태고이전부터 이미 흩뿌려 놓은 공기를 값없이 그저 빨아들이고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고 스스로 자기 영혼의 청빈함을 자부하는 구도자도 산소를 끊임없이 빨아들여 썩은 몸의 찌꺼기를 허공에 담아내고 있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 살아있는 것은 밟지 않겠다고 선언하고픈 모습도 역시 흙과 함께 사는 수많은 생명체의 목을 밟고 다닌다는 것을 알지 못한 체 나는 생명을 죽이지 않았다고 스스로 교만해 하고 있다. 이 가을은 모두 주는 만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다만 받는 것은 인간뿐이다. 수수의 그 살찐 머리채가 잘리어 마당에 수북이 쌓여 있다.

그 알알을 먹기 위해 도리깨질을 하는 추수꾼에게 자신의 몸을 조각조각 찢어 내어 주며, 처절히 주는 잔치를 누가 알랴. 마음껏 드리리라. 타작마당의 합창은 성가(聖歌)중에 성가(聖歌)이다. 헨델의 메시야 보다 더 웅장한 교향곡이 타작마당에서 연주하고 있다. 가을은 거룩한 주는 자들로 가득한 계절이다. 싸리문 옆에 아무렇게나 서 있는 맨드라미나 들국화는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아니한다. 항상 웃고 서 있다.

언제 나의 미소를 보고 기뻐하실런지, 하늘의 수많은 별과 휑하게 비어있는 허공을 날아가는 바람에도 미소를 짓고 있다. 낮에 뜬 반달이 명주처럼 빠꼼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데, 도둑가시만 뜯기어져 버려지고 있다. 도둑가시는 사랑한다고 하며 정열의 키스로 나에게 보내지만, 그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다만 아프게 할 뿐이다. 저 홀로 열정적 사랑의 고백을 해 데는 짝사랑이 자기만족을 위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시대는 모두가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짝사랑하는 사람들로 부딪치고 또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모두 슬프고 버림받고 있다.

윤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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