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부천신문] 세계 역사 속의 수많은 개혁 중에 대표격 개혁을 언급한다면 아무래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일 것이다. 이 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95개 조항으로 카톨릭 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바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개시함으로서 시작되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그 당시 부패한 종교에 대한 개혁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자기 자신의 개혁을 위한 정신적 몸부림이었다. 마틴 루터는 어떻게 하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까? 부심하였다.

그는 성직자 임에도 불구하고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 매순간마다 죄를 짓는 자신의 나약함과 불의한 모습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개혁, 어떻게 하면 성결한 영혼과 인격이 되느냐에 고심하였다. 그 당시 죄를 지으면 사죄 즉, 죄 용서를 받는 방법은 교회적으로는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다. 신부를 찾아가 자기의 지은 죄를 고하는 것이다. 이 죄 고함을 신부가 듣고 용서를 전하는 것이다. 이로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 자신이 스스로 회개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마틴 루터는 이 고해성사를 통하여 죄를 고하고, 사죄의 선언을 들었지만, 자기의 마음에 사죄 받은 자의 기쁨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런 확신도 없었다. 사죄의 기쁨과 확신을 위해 그는 고행도 해봤다. 맨 무릎으로 성당의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피가 낭자하도록 고행을 해보았다.

하지만 마음에 흡족한 죄 사함의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는 성서를 읽던 중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는 것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카톨릭은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가르쳐 수많은 사람들을 종교적 틀에 얽매어 고통을 받게 하였다. 루터는 말씀을 통한 자기 개혁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종교로 얽매임 받는 것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선언이었던 것이다.

그는 종교 재판장에서 죽을 수도 있는 위험 중에서도 담대히 자기의 믿음을 굽히지 않고 증언했던 것이다. 아무리 법이 공정해도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바르지 못하다면, 그 법은 바르게 집행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개혁의 구호가 아무리 타당할 것처럼 보일지라도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이 개혁되어 있지 않다면 감히 개혁을 부르짖을 수 없다.

미얀마 수지 여사는 오랜 시간 동안 수난의 세월을 보냈다. 군부의 그늘에서 그녀는 인내의 인내를 더한 인내를 감당하였다. 드디어 지난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이제 미얀마를 개혁하는 개혁정치가 이루어질 것 같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개혁자였다.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강한 개혁의 사람이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개혁을 이루어갔다.

문민정부의 첫 대통령으로서 그의 개혁의 결단은 단호했다. 정치적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리한 수술을 이루며 문민정부의 발판을 만들었다. 경제적으로도 금융 실명제라는 제도로 경제 투명을 위한 대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故 김영삼 전 대통령 자신은 늘 자기 개혁을 이룬 결단이 개혁이었다. 자신의 흠과 그름도 해결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개혁이 없이는 개혁을 말할 수 없다.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의미의 단체나 뜻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분들이 있어 다행이다. 감시의 역할을 하고, 새롭게 개혁되어야 할 부분을 스스로 개혁하는 모습을 선행하며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자가 준수해야할 몇 가지 계명이 있다고 본다. 먼저 개혁자가 되려면 나라나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워야 한다. 그리고 나라나 공동체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위는 그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는 법의 준수일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불법적 방법으로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그 나라와 그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개혁을 이루려면 반드시 개혁의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 수술을 하는 의사가 생명을 사랑하지 않고 수술을 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수술의 댓가만을 바란다면 그저 노동자일 뿐, 그는 참 의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명감 없는 자의 업무수행은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심장병 환자를 무료 시술해 준 일이 있다. 지금은 미얀마 어린이들의 심장수술을 무료로 한 달이면 3~4명씩 해주고 있다.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개혁자는 내가 개혁되어야 가능하다. 대상을 진실로 사랑할 때,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개혁할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아니할 것이다. 개혁자가 가져야하는 자세도 문제다. 개혁자는 섬기는 마음으로 개혁해야 한다.

마틴 루터가 개혁할 당시 유럽은 대다수가 카톨릭 서방교회가 국교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직자의 교권주의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황제도 교황 앞에 무릎을 꿇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종교인의 교권주의에 대해서 기독교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즉 제자들의 발 아래서 제자들의 발을 씻던 섬기는 종의 자리로 낮아져야 비로소 개혁자로서의 품성을 이루는 것이다.

강한 조직과 물리적 자금력과 착취된 동원력 또한 개혁자 자신의 유익만을 위한 행위는 개혁이 아닌 굴절된 집단적 폭력이며, 그 어떤 가치로도 평가받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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