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 칼럼]

[부천신문]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을 보며 하나님이 가장 미심쩍은 것은 “저 영혼이 언제나 맑게 지켜질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문제로 긴 침묵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기척이 없다. 사람이 어디론가 떠나가 버렸다.

“사람아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찾아 나섰다. 어떻게 만든 사람인데 겉모양의 재료야 별거 아닌 흙부스러기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 하나님의 생기와 영을 불어넣었는데, 어쩜 자기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긴 사람인데 나를 두고 어디로 떠나가 버렸단 말인가?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불렀다. “사람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예, 내가 숨어있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 하나님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결국은 ‘그 맑은 영혼에 상처가 낫구나. 죄란 걸 먹었구나. 저 상처를 어떻게 하면 낫게 할까? 그리고 흉터를 없게 해줄까?’ 생각하다가 결심을 한 것이다.

사람, 자기의 갈비뼈를 빼내서 여인을 만들어 주었다. 그토록 좋아서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로다.’라고 좋아 하던 사람, 이번엔 사람의 영혼의 생채기를 흉터 없이 지울 수 있는 영혼의 지우개를 만들어 그에게 주었다.

그것이 바로 ‘용서’이다. 가죽으로 만들었다. 어느 한 생명이 죽어지고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죽이고 만든 가죽이다. 이 용서라는 영혼의 지우개는 이상하다. 이웃의 영혼에 티가 묻어있으면 이를 깨끗이 지워주는 사람의 영혼이 함께 깨끗해지는 것이다.

나의 영혼이 미움, 분노, 증오로 내가 스스로 괴롭고, 힘들고, 어려워 고통을 당할 때, 나의 원수, 나에게 악행한 자, 나에게 지대한 손해를 끼친 자를 사랑하고, 그의 영혼에 깊이 파인 상처나 더러워진 것을 내가 용서의 지우개로 지워주면 오히려 나의 영혼이 더 맑아진다는 것이다.

어느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처럼 천국에는 수저의 자루가 길다고 했다. 천국 사람들은 그 자루가 긴 수저로 차려진 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앞에 앉은 사람의 입에 넣어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단다. 서로 서로 사랑을 주며 즐기는 나라가 천국이라는 곳이다.

지옥은 천국과 다를 바가 없는 곳이었다. 다만 다르다면 자기가 자신을 위해서 차려진 음식을 그 자루가 긴 수저로 자기 입으로 먹으려고 하니 도무지 자기 입에 넣을 수 없어서 화를 내고, 고통스러워하나 전혀 먹어지지 않아 깡말라 있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손해를 본 일은 이미 일어난 일, 모질게 다툰 일도 이미 지난 일, 서로가 증오할 수밖에 없었던 그 때의 그 일은 지난 일, 다만 남은 것은 현재 나의 마음의 흔적이다.

이 흔적은 지난날의 아픔, 고통, 괴로움, 미움, 증오의 사건을 계속 떠올린다면 그 흔적에서 새록새록 그 때의 감정, 그 때의 입은 상처, 그 때의 손해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 흔적이 지워져버려야 재생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란 지우개로 영혼을 맑게 지워버리면 그 흔적이 지워지는 것이다. 흔적이 지워지면, 그 흔적은 망각이라는 용광로에 던져져서 불타버리고 마는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기억조차 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스럽게도 사람은 좋았던 기억은 금방 사라지고, 좋지 못했던 기억은 오래 오래 자꾸만 되살아난다. 다시는 되살아날 수 없도록 망각의 용광로에 불태워버려야 하는 것이다.

망각하지 않은 용서는 온전한 용서가 될 수가 없다. 부부의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지난날의 아픈 상처를 되풀이해서 생각을 떠올리고, 관계가 좋지 않아질 때마다 이를 화제로 삼아 다툰다면 과연 행복할까?

가령 과거에 남편이 사업을 하다 실패를 했다고 하자. 이로 인하여 부인이 부채문제로 고통을 당했다고 하자. 이런 지난날의 이야기를 사이가 좋지 못할 때마다 이런 과거의 일로 남편에게 상기시켜주면, 남편이 앞으로 새 일을 할 수가 있을까?

지난날의 패배의 기억과 부인의 견디기 힘든 책임추궁과 원망을 들으면서 사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을까?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부부가 계속 다툰다면 차라리 실수와 패배와 아픔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부부가 헤어질 수 있는 위험이 다분히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랑이라는 질서 속에는 같이 했던 기쁨, 만족, 즐거움, 아픔, 고통, 괴로움, 외로움 등이 모두 뒤섞여 있다.

다만 ‘둘이 같이 했다는 것’이 사랑의 질서인 것이다. 둘이 같이 살아온 지난날의 어둡고 부정적인 흔적은 영혼의 지우개로 지우고 망각의 용광로에  태워버려야 늘 새 사랑을 나눔이 행복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 한 해 동안 지나면서 서로 부딪치고, 상처 받고, 아프고, 힘들고, 어려웠던 흔적이 나의 영혼에 남아 있다면 용서하라. 영혼의 지우개가 서로의 영혼을 깨끗이 지워줄 수만 있다면, 한 해가 행복된 한 해로 바뀔 수 있다.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한바탕 왁자지껄한 시간도 좋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이끼리 조용히 앉아 서로의 영혼을 용서라는 지우개로 닦아주는 망년회, 이런 망년회가 참 망년회가 아닐까? 따뜻한 가슴을 포개는 송년의 밤이 필요한 것 같다.

윤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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