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사해라는 이름의 큰 호수가 있다. 염도가 높아 사람이 헤엄을 치지 않아도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이 사해가 바로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타락과 방탕의 대표적 사람들로 불리는 이유는 성서에 기록됨으로 비롯한다. 어느 날 아브라함을 천사들이 찾아왔다. 천사들이 아브라함에게 말했다. 내가 소돔과 고모라로 간다. 가서 보고 방탕하고 악한 인간이 사는 도시라면 심판하겠다고 말한다.

이 때, 아브라함은 그 도시에 조카 롯이 있음을 생각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중보와 용서의 기도였다. “하나님, 그 도시에 의인이 50명이 있다면 그래도 심판하시겠습니까? 의인과 악인을 함께 심판하시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가 아닙니까?” 이에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의인 50이 있으면 심판을 유보하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생각해 보았다. 의인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시 가능하면 10명만 있더라도 용서하시겠느냐고 까지 기도하자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인 10사람이 그 도시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심판의 유황불이 하늘에서 내려치기 시작했다. 화산이 터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아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노아야 내가 이 땅 모든 사람들을 물로 쓸어버리겠다. 너는 방주를 지어라.”라고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고, 자녀 낳고 그렇게 생리적으로만 살 뿐 정신적으로는 죽어 있다. 정신적으로 죽어있는 인간들은 모두 죽은 시체나 다름없다고 보신 것이다. 드디어 최후의 날이 왔다. 비가 하늘에서 쏟아지고, 땅도 물을 토하였다. 그리하여 이 땅은 물로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지진은 단층의 이그러짐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수천 억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아무 문제가 없던 단층이 왜 부딪치거나 이그러지느냐라고 과학자들에게 물으면 지구 생성 때부터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구조 되었다고 답변한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일까? 폼페이 최후의 날 역시 화산재로 뒤덮여서 삼만 여명이 살던 도시가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폼페이는 이탈리아 지역에 있는 도시로 AD 1세기만 하더라도 번영과 영화를 누린 나라였다. 그러던 어느 날 베수비오 화산이 터졌다.

1738년 4월 어느 날 한 농부가 베수비오 산에서 밭을 갈다가 깨진 파이프를 발견하게 된다. 이 파이프가 수도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폴리 국왕은 발굴을 하라고 지시한다. 1755년 독일 고고학자 요한 빙켈만에 의해서 밝혀진 것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이 고스란히 화석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화려한 삶을 살면서 부도덕한 성생활과 방탕한 삶을 살았음이 밝혀졌다.

인간에게 심판 같은 천재지변에 일어나는 것은 도덕적 타락으로만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단정짓는 것을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유신론자(有神論者)는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한다고 믿고 있기에 자연현상의 모든 것까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천재지변과 인간의 도덕성과 하나님의 판단은 필연적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경주를 필두로 해서 지진이 일어났다. 5.8의 지진이다. 역사적으로는 신라시대에 한번, 조선시대에 한번, 그리고 지금 400년 만에 일어난 지진이라고 한다. 지진에 대한 예측은 아직 인간의 힘으로 완벽하게 할 수가 없다. 지진이 일어난 후 안전에 대한 완전한 매뉴얼이 없다고 한다.

성서에 의하면 인간의 윤리가 인류의 최후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믿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인간의 삶이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교훈은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도 삶이 아무리 편리해져도 인간의 도덕성이 무너지면 행복한 사회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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