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정보의 바다에 빠져 살아가는 물고기와 같은 모습은 아닐까 싶다. 지하철에서도, 버스정류장에서도, 가족끼리 모인 식사자리에서도, 어디서든지 고개는 떨구고 그저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

요리를 하다가도 스마트 폰을 열어 요리정보를 검색하고, 심지어는 처음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하고 이내 돌아서서 받은 명함을 화장실에서 검색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한 다음에야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이다.

검색을 하면 그것의 사실 여부가 밝혀진다. 검색되는 정보는 사실(fact)이 되고, 그 정보가 믿을 만한 근거가 되는 세상이다. 직접 그 당사자가 자신에 관해 진실을 밝힌다 하더라도 관심 없다. 그것은 객관성이 이미 결여된 사실이 아닌 주관적 정보라 간주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는 이미 어떤 일에나 만남에 선이해를 바탕으로 모든 관계를 시작한다는 말이다.

시각은 각각 다르다. 인터넷 상에는 이렇게 다른 각각 자신의 주관으로 작성된 글들이 올라온다. 좋은 관점이라면 관대와 칭찬을, 비판적 관점이라면 추측성 음해정보까지 올려놓을 수 있다. 여기에는 공신력이 있다는 언론들도 포함된다. 우편향 신문의 기자는 우편향 관점으로 사실을 보고 글을 쓴다. 좌편향 기자는 똑같은 사실을 보고는 좌편향 관점으로 글을 쓴다. 사실 하나를 놓고도 기사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보도되는 것이 우리가 접하는 일상이다.

이뿐이랴? 사회의 가리어진 내용을 알리는 소위 고발성 프로그램을 보면 ‘의혹’이라는 깃발을 들고 그럴싸한 당위성을 가지고 마치 승인 받은 암행어사라도 된 듯 공익이라는 미명아래 또 다른 권력을 휘두른다. 이 때, 더욱 자극적 소재와 이목끌기가 동원되기도 한다. 어느새 사실보다는 연출되어버린 고발 프로그램의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고발당하고 있다. 보도의 대상이 되는 기업과 개인의 다음에 대해서는 상관이 없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시청률이다. 특종을 많이 하여야 된다. 여기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뉴스 보도나 사회고발성 보도의 목적은 오직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기사를 쓰고 연출을 할 뿐이다. 취재와 보도의 취재원은 기자나 PD의 먹잇감에 불과하다.

포식자가 먹잇감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먹이사슬의 윗자리에 있는 야수처럼 그렇게 행동한다. 형식상 제보자도 그 취재원도 인터뷰하거나 조사를 한다. 그러나 실제는 인터뷰한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반증한 자료도 휴지통에 집어넣는다. 얼마나 독자나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훔치느냐가 목적일 뿐이다. 이러한 보도성향의 언론기관과 기자나 PD가 비일비재하다.

뿐만 아니라 방송 후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진실성이 인정되자면 적어도 3년 내지 4년이 걸린다. 사법부를 통한 지루한 조사, 심문 및 기소재판이란 견딜 수 없는 수모스러운 과정이 계속된다. 그 동안 정상생활을 할 수가 없다. 트라우마가 너무나 강하게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실과 다른 보도가 세계로 나간 것만 해도 삶을 포기하고 싶은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 사법부에서 조사 받고 재판 받은 과정은 죽기보다 싫은 여정이다. 오늘의 사법부의 삐뚤어진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지 않는가?

‘내부자’란 영화가 있었다. 허구 중에 허구일 것이다라는 영화이야기가 사실을 예언한 계시 같아 졌을 모든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런 인사들에게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조사가 조사가 아니라 인격이 내동댕이쳐지고 자존심이 짓밟히는 처참한 침탈의 순간일 뿐이다. 심지어는 범죄 일람표를 고소한 사람들에게 작성시키는 조사관도 있으니 이거야말로 피의자의 인권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피의자의 인권 실종의 사태를 모두 겪어야 한다.

오죽하면 검찰 조사 후 자살을 하겠는가? 이런 진흙탕 싸움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우여곡절 끝에 무죄라는 판결을 받고나도 보도한 언론은 정정이나 사과보도를 철저하게 외면한다. 그것이 언론의 자존심과 신뢰가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상은 그들의 수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광고 수주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언론의 무모한 보도에 의해서 기업이 문을 닫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유명 연예인의 연예활동이 중단된 경우도 많았으며, 종교인들도 치명적인 신임도의 추락으로 평생을 쌓아온 신덕이 무(無)로 돌아간 예도 있다. 정보의 선택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몫이다. TV에 보도되었다고 모두 진실이 아니다. 또한 언론에 보도된 대로 모두 사실도 아니다. 특히 SNS에 올린 숱한 정보는 도무지 신뢰하기가 힘든 경우도 많다. 전문가로서 올린 정보도 착오가 많다고 해서 방송 중에도 자막이 나오기까지 한다. 정보의 판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보를 공급한 공급원을 자세히 분석하고, 그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주장이나 이론이나 실험한 가설이 보편화되어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며, 특히 의혹이라는 가면을 쓰고 연출한 보도는 사법적 결과에 따라 사과와 용서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추후라도 정보는 취한 사람의 인식을 만들고, 그 인식이 그의 지식이 되고 나아가서는 인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보의 바다에 사는 물고기 같은 현대인은 정보의 올바른 선택에 삶의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염두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자들은 그 무거운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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