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하늘을 보고 땅을 보아도 우리 주변에는 늘 베푸는 손길로 가득하다. 수령을 알 수 없는 거구들이 헤아릴 수 없는 가지들을 늘어뜨리고 그 끝자락마다 주먹만 한 주홍빛 감들을 내밀며 마치 ‘누구나 가져가세요’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수줍은 새색시처럼 빨개진 두 볼을 나뭇잎으로 감추며 사랑의 고백인 듯 ‘드립니다’ 외치는 것 같다. 낯익은 들국화 역시 부끄러운 듯 웃는다. ‘국화, 너는 늘상 무슨 좋은 일이 그리 많아 항상 웃고만 있냐?’ 어릴적 소먹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쫓겨나 앞마당 끝자락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생긋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던 너, 지금도 얼굴 하나 변함도 없이 나를 향해 웃고 있구나.

고운 마음을 행복한 마음을 ‘드립니다’ 하듯 국화는 이 가을도 우리를 보고 웃고 있다. 하늘에 치솟은 가지 끝에서 외로이 달려 흔들리던 잎들은 생명의 깃발처럼 가을 소르란 바람에 낙엽이 되어 발밑에 떨어져도 마냥 자유로워 보인다.

그리고 어느새 형형색색의 조화를 이룬 단풍이 되어 발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지금은 유기물의 끝자락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기물로 변화할 것이다. 잎은 바스라지고 다시 뿌리를 만나 유기체로 바뀌어 어느 봄날 나무 끝가지에 매달려 다시 녹색 찬란한 깃발로 흔들리게 될 것이다.

펑퍼짐한 논에는 벼이삭들이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있다. 가을 들녘 논둑에 서 보면 누구나 황제가 된다. 다 익은 벼이삭들이 머리 숙이며 신하의 예를 갖추어 주는 듯 하기 때문이다. ‘소신을 베어 가시옵소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베어가라고 충성으로 진상하는 신하들 같은 벼를 보면 먹이사슬의 최상위 자리에 앉아 그저 누리기만 하면서 오히려 더 가지려는 탐심에 사로잡혀 서로를 헐뜯고 빼앗으려는데 혈안이 되어 살아가는 인류의 삶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가을의 모든 생명들은 어느 것 하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이기적인(selfish) 것들이 없다. 모두가 내어주고, 베풀고, 나누는 것들로만 가득하다. 그래서 가을은 마음부터 풍성해지는 것 아닐까?

이 가을의 계시(Revelation)를 듣고, 보고, 만지면서 인간은 도대체 언제까지 빼앗아  모으고 쌓는 일로 이 아까운 일상을 소진할 작정인지 모르겠다. 더 많이 모으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를 하겠노라고 기업가는 천재적인 방법을 발휘한다.

한 겹의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쥐고 허공을 바라본다. 수많은 나무들이 베이고, 잘리고, 깎이고, 부서지고, 쪼개지고, 뭉그러져 이내 고운 가루로 만들어진 이 휴지 한 조각 속에 늘 수많은 아픔과 비명 소리들이 아직 외치는 듯하다.

그 나라의 부를 측정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휴지면의 부드러움을 예로 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피부에 보드라움을 얻기 위해 자연을 무참히 학대해서 얻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에 질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자연을 정복하고 그것은 당연시 되었다. 분명 이로 인해 인류의 생활환경은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 사람이 살아야 할 필수조건인 자연환경은 계속해서 퇴보하고 악화되고 있다. 이로 인한 자연의 재해는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말없이 침묵한 채 마치 죽어 있는 듯이 무덤덤했던 자연이 그 거대한 힘을 보일 때면 인간은 무능력해질 수밖에 없다. 지구 온난화, 미세먼지, 수소폭탄보다 더 무서운 공기의 오염은 소리 없이 사람을 질식시키고 죽음으로 인도한다. 빙하는 계속해서 녹아들고 바닷물의 수위는 높아져 세계 각국의 여러 섬들이 이미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지진이 발생하고, 허리케인이 대륙을 강타하고 있으며, 이름도 생소한 방법으로 자연은 그 살아있음을 인간에게 알리고 있다. 땅은 밟아도 말이 없고, 땅의 가슴을 농기구로 헤쳐도 말이 없으며 땅을 헤집고 굴속으로 들어가 보석을 캐내어 와도 말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저 침묵과 인내로 참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프다고 한다. 힘들다고 한다. 이젠 견디는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불을 품고 연기를 내며 인류에게 아프다고 외치고 있다. 태고적부터 어머니처럼 가슴을 내어주고, 생명에 필요한 모든 먹거리를 내어주던 자연이 아파하고 외치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부호들이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생을 마감한다. 철강왕 카네기도 그랬고, 희대의 거부 록펠러도 죽었다.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그들이 살아생전에 그 부를 나누어 기부해서 세웠던 학교, 병원, 도서관 그리고 교회들뿐이다.

‘온 세상에 바쳐 드립니다.’ 지금도 외치고 있는 가을의 계시를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의 살아간 흔적에 존경들이 쌓이고 있다. 이 가을의 계시(Revelation), 그것은 바로 ‘주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진리이다. 이것을 음미하는 가을이면 어떨까? 인생은 나누어 준 것만이 흔적이 되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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