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가을의 끝자락으로 접어들 때 어제 밤엔 소리 없이 가을비가 왔다. 떨어진 잎들은 보도에 엎드러져 자신을 비운 겸허를 느끼게 한다.

가을엔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왜 가을엔 외로울까? 하늘이 공활해서일까? 자람을 멈추고 황혼을 맞는 식물들 때문일까? 아니면 더운 열기의 정열적 여름에 비해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서 그럴까? 어느 계절보다 가을은 외로워지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것 같다. 가을의 외로움은 가을의 은총이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가을이 주는 외로움의 은총을 누리면 사계와 상관없이 언제나 만나고 누구나 사귈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외로움이 나를 견디지 못하게 뼛속까지 파고들거든 자존심이란 동굴을 벗어나 두려움의 문을 박차고 나서라.

그리고 먼저 손을 내밀라. 내민 손을 누군가 금방 잡아주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말라. 손 내미는 외로운 누군가를 위해 마음 여는 배려라고 생각해보자. 나의 내민 손에 누구의 손이 포개지든 상관이 없다. 내밀어 놓자. 동성이 내 손을 잡아주든지, 이성이 잡아주든지, 노인이 잡아주든지, 어린이가 잡아주든지 상관이 없다. 잡은 두 손에는 온기가 일기 시작한다. 따듯함이 온 마음에 스며들며 가슴과 심장도 따듯해 질 것이다.

체온이라는 물질의 변화가 마음의 변화로 옮겨 갈 것이다. 해맑은 어린아이가 손을 잡아주거든 그대의 키를 낮춰라. 그 어린이 얼굴과 그대의 얼굴, 그리고 그 어린이의 눈과 그대 눈 마주치거든 입을 열고 말을 해보라. 어린이는 모든 인류의 조상이다. 누가 어린이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자가 있던가?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라.

본향을 만난 듯이 정답게 말을 나누어 보라. 어린이를 사귀면 어린이가 되고, 어른과 사귀면 어른이 된다. 일찍이 예수는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까지 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 아름다운 동거함을 의미한다. 이게 웬 행운인가? 하나님 나라의 향기를 취해보고 그 노래에 입 맞추어 보라. 발맞추고 춤을 추어 보라. 어른으로 어른스럽게 살던 구차스럽고 거추장스러움을 잠시 벗어던지고 즐겨보라. 지옥 같은 세계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으니 이야말로 수지맞는 일이 아니던가?

잎 크기가 넓은 단풍은 백만원짜리, 조금 적은 단풍은 오십만원짜리, 그 보다 더 작은 잎은 십만원이라 정하고 사랑을 사기 위해서 하늘이 만든 지폐를 사용해 보라. 소년에게 노래하라고 하라. 아니면 스스로 노래를 하든가. 한번 노래하면 수천억원을 그에게 흩뿌려주라. 우뚝 선 나무들을 관객이라고 생각하고, 잔치마당을 벌려보라. 동화를 쓰느냐고 비아냥거릴지 모르지만 잊어버린 계절, 어린이의 계절에 회귀하여 거기서 잠시라도 머물러보라. 얼마나 세속의 떼가 더덕더덕 나를 조이고 있었는지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반려동물에 푹 빠져 들고 있다. 잃어버린 나를 내가 다시 만나지는 것 때문이다. 내가 입을 벌리면 어머니가 주시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고, 누우라면 눕고, 재워주면 자고, 손을 잡고 걷자면 걷던 전적인 믿음의 가슴에서 지내던 나의 모습이 반려동물에서 나를 찾아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아무데나 배설을 하다가 잔소리 잔소리 끝에 일정한 장소 어디에 배설하면 그토록 기특하여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해주고 있지만, 잃어버린 나의 어린 시절에 내가 듣던 그 칭찬을 내가 반려동물에게 해주며 내가 다시 듣는 기쁨을 즐기고 있지 않는지 손을 내밀어 어린아이가 손에 잡히면 뿌리치지 말고 가슴으로 받아들여 보라.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는 희락으로 더는 외로워지지 아니할 것이다. 혹시 노인이 낙엽 지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그에게 옆에서 손을 내밀어보라. 그 노인이 손을 잡아 주거든 반갑게 그 손을 꼭 쥐어보라. 노년은 나의 내일이다. 몇 마디의 친절만 베풀어도 밤을 헤이도록 그 숱한 별만큼이나 많은 인생의 사연을 들려줄 것이다.

첫날밤의 이야기, 첫 딸 낳고 울던 이야기, 아이 키우던 이야기, 시시콜콜 그들의 조상 이야기, 삶의 진주들을 거침없이 쏟아 놓게 될 것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의 미래이다. 내가 걸어가야 할 나의 내일의 길을 안내 해주고 있다. 사업의 실패와 성공, 사랑의 생성과 소멸,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의 사연, 가졌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공허, 살아보고 다시 사는 사람이 되어 지혜자가 될 것이다.

내일의 나의 일생을 시뮬레이션 하는 듯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수지맞는 행운인가?

가을은 나를 외롭게 만들지 않는다. 다만 내가 손을 내밀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망각의 갇힌 나를 만나고 아직 살아보지 못한 막연한 날이 또렷해지는 이 만남과 사귐은 가을을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는 혜지가 아닐까? 가을의 외로움은 내가 내 안에 웅크리고 안으로 문을 잠근 마음의 탓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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