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누가 너 촛불을 성스러운 빛이라고 불렀는가? 너의 살갗을 태워 빛을 훔쳐가는 자 누구인가? 욕망을 소원이라 읊조리며 대자 대비함을 바라고 법당에 엎드리기를 수없이 하면서도 불을 밝히기 위해 몸을 태우는 초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복되는 소원 성취를 위해 절하기는 끊임이 없다. 욕망이 끊임없듯이, 오로지 자기 소원에만 마음을 두고 있으니 몸 타는 촛불은 안중에도 없다. 초가 타야 소원이 성취된다면 온 몸을 다 태우고 또 태우겠지. 소원이 자신에게와 중생들에게 유익한지도, 유해한지도 모르면서 빌고 있는 사람의 욕망을 보며 초의 마음이 아플 뿐이다.

나는 왜 내 몸을 불태워 다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정성을 쏟는 이를 위해 몸을 태워야 하나 자기만을 위한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에게 쓰임 받음이 못내 괴롭기만 하다. 왜 자기 뜻은 이루어져야 하고, 남의 뜻은 꺾어져야 하는지 사람들의 외침을 알 수가 없다. 나의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온 몸을 태워 녹아져 없어질 때까지 희생하지만 내 뜻을 이루기 위해 몸을 태워 본 일이 없다.

임금의 소원 성취, 신하의 소원 성취, 장군의 소원 성취, 부자와 가난한 자의 소원 성취를 위한 독경은 계속되지만 초인 나에겐 전혀 감화를 주지 못하는 소음일 뿐이다. 나는 이제 이 도회지 광장에 끌려 나와 내 몸을 불사르고 있다. 오래전엔 나는 내 몸에 불을 붙여 빛을 비추이게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정을 놓고 한 없이 흘리는 자녀들의 눈물을 볼 땐 내 몸이 타들어감에도 기쁨의 눈물을 주르륵 주르륵 흘렸다.

어느 날 홀로 남기고 돌아간 남편의 제삿날 나의 몸에 불을 붙이고 왜 나를 두고 먼저 갔느냐고 몸부림치는 울음을 듣고 나도 한 없이 울었다. 법당에 놓여진 그 날 밤, 나는 선선하고 엄숙하였으며, 보람찼다. 그 밤도 나의 몸에는 불이 붙었다.

청아한 목탁 소리에 가슴이 울렁거리며 하늘이 내려앉은 것 같은 엄숙함이 흐르고 있었다. 망자를 위한 독경이 마치 나의 영혼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스님은 좌우를 돌아보며 목탁은 목탁이요, 스님의 마음은 마음이었다. 누가 와서 함께 기도하는가? 어젯밤 만난 보살은 왜 기도하지 않는 가에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세속의 인연을 끊고, 이 산중에 들어와 오로지 자기 득도에만 마음을 둘 뿐이다.

그 역시 나, 촛불에는 관심이 없다. 흔들리는 불꽃은 더욱 나의 몸을 찌르듯 뜨겁게 태우곤 한다. 내가 성당의 초꽂이에 꽂혀 있을 때 신부님의 묵상은 나를 즐겁게 하였다. 소원도 없다. 빌 것도 없다. 미사를 위한 미사를 드리고 계신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그렇게 춘하추동, 사계가 온도만 다를 뿐 같은 세월이 흐르는 것처럼 미사는 같은 시간, 같은 몸짓으로 그렇게 매일 드려지고 있었다.

나도 졸고 있었다. 나도 내가 여기서 몸을 태우며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야윈 손이 나를 잡아 어느 초가집 단칸방 등잔 위에 올려놓았다. 바늘에 실을 꿰기 위해서 할머니가 나의 볼 가까이 와서 몇 번이고 시도하더니 드디어 바늘에 실을 꽂았다. 펼쳐 놓은 이부자리를 꿰매기 위해 열심히 손놀림을 하고 있었다.

차가움을 걷고 따듯함을 주기 위해 이부자리를 꾸미는 할머니는 뭔가 혼자 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마음을 쏟고 이부자리를 만들어 꼭꼭 싸매어줘도 누가 할멈의 마음을 알아줄까 하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나도 한숨을 쉬었다. 뚫어진 문틈 구멍 사이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이 몸이 이렇게 타고 있어도 누가 나의 몸이 녹아나는 것을 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각되어서다. 어느 작은 책상머리에 내가 놓여졌다.

그리고 한 젊은이가 책을 펴고 밤이 늦도록 새벽 샛별이 하늘에 떠오르는 시간까지 책만 응시하더니 갑자기 머리를 숙이고 잠이 들었다. 내 곁으로 다가왔다.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다가 쓰러져 잠에 취한 것이다. 드디어 나의 가슴에 그 소년의 머리카락이 닿았다. 머리카락이 탔다. 누릿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소년은 그것도 모르는 체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축복하고 싶었다. 그대 꿈이 이루어지길.

왁자지껄한 광장에 수많은 촛불친구들이 모였다. 헤일 수 없이 많이 모였다. 촛불마다 몸을 태우고 울부짖고 있었다. 누구를 위하여 타야 하나. 우리의 빛을 이용하여 흉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증오와 분노, 그리고 폭력과 갈등, 저주, 그리고 원망과 광란을 위해, 촛불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처럼 자기는 태우지 않고 남들만 타서 죽으라고 하는 사람들이 왜 우리를 손에 잡고 있는지. 숨 막히어 달아나고만 싶은 밤이다. 광장에 타고 있는 모든 촛불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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