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에서 인도까지 국토를 확장시키고 대왕이라는 칭호를 30대 초반에 얻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생애는 외로운 헬레나섬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그가 남긴 유언은 지금도 기억하는 이가 많다. ‘내가 죽거든 관 밖으로 나의 두 손을 보이도록 하여 운구하십시오. 내가 빈손으로 생의 마지막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온 시민들이 보고 깨닫게 하시오.’ 그는 그렇게 화려했던 33년의 생을 마쳤다.
33살에 생을 마감한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있었다. 알렉산더가 죽은지 3세기 후에 십자가형을 당하며 죽었던 예수다.
그는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를 남겼다. 죽어가며 그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말은 자기를 매달은 사람들을 향한 기도였다. ‘하나님, 저들은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를 올리고 다 이루었다 말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는 왜 이렇게 죽어야만 했는가? 그가 달린 십자가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예수는 권력의 정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을 줄 알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십자가에 처형당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하여 왕 중의 왕이신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제자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중에 베드로라는 제자는 ‘그럴 수 없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십자가 질 수 없게 하겠노라.’고 막아섰다.
이 말을 들은 예수는 즉시 그를 호통을 쳤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어찌하여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느냐?’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며, 사탄의 일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일은 바로 섬김이다. 사람의 종이 되어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예수에게 권력이란, 그 힘을 부여하신 주체가 사랑하는 사랑의 대상을 섬기고, 그들을 향해 종이 되는 것인데 어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사로운 목적(司牧)을 위해 자기 사랑에 빠져 있는가라고 하나님의 질서를 가르쳤던 것이다.
왕 중의 왕은 즉,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을 허락하신 분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서 자기를 온전히 바치는 것이 권력 가진 자의 책임이며, 그것이 바로 행복임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권력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바치라고 가르쳤다. 그 가르침대로 온전히 살았던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권력이란, 섬기고 사랑하기 위한 종노릇의 수단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그 힘을 사용할 수 없고 해서도 아니 된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함께 먹고, 자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예수의 능력만 알 뿐이었다. 그분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들을 감동케 하였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으로 상경하면 유대의 왕이 되실 것이며, 나아가서 세계 최강의 로마 제국 식민지로 통치와 착취를 당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독립시키고 유토피아를 이룰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런 이유로 누가 예수의 권력의 중심부에 있느냐에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부귀영화와 자기의 철학대로 행사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쾌락도 즐길 수 없다. 제국시대의 권력은 권력을 잡은 자의 사적인 욕구 충족과 권력을 통한 지배가 당연한 시대였다.
이러한 일로 서로 서열 다툼을 하고 있는 제자들 앞에 예수는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타나셨다. 그 당시 시중드는 종의 모습이셨다. 물을 대야 가득 담아 와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다. ‘내게 발을 씻기지 않는 사람은 나와 상관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뜻일까? ‘내가 너희를 섬겨주므로 너희도 나의 본을 보고 섬기는 자가 되고, 낮은 자리에 내려가 종의 역할을 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드디어 예수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이 ‘오직 남에게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남을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권력은 섬기고, 사랑하고, 나누어주고, 종노릇하는 자의 종노릇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권력은 자기를 위해서 사용할 수 없다. 오직 타자를 위하여서만 사용되어져야 한다. 권력은 오직 이웃의 종노릇하는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