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이스라엘 국기에는 별 하나가 그려져 있다. 그 별은 다윗을 상징한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토록 다윗을 추앙할까?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2대 왕이었다. 그의 신앙심과 인격, 나라를 다스렸던 통치 이념과 업적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계승되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추앙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다가올 이스라엘의 유토피아가 다윗 같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 질 것이라고 굳게 희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윗은 ‘이새’라는 아버지 밑에 8형제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용모가 그다지 준수하지 못했던지 사무엘이라는 신탁을 받은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왕을 선택하는 자리에 형제 모두가 있는 자리에 부름을 받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자신의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아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아 기름부음을(왕으로 쓰겠다는 의식) 받게 되었다. 이런 다윗이 결정적으로 모두에게 인정받는 계기는 바로 골리앗과의 전투이다. 당시 철기 무기를 사용했던 최첨단의 군대의 선봉 골리앗을 구시대의 유물인 물맷돌을 던져 승리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민심은 당시 집권하던 사울 왕을 넘어 다윗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이를 시기한 사울 왕은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친위대를 거느리고 다윗을 찾아 나선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동굴 안에 숨어 있던 다윗이 굴 밖으로 나오다가 용변을 보기 위해 잠시 무장을 해제한 사울을 만나게 된다. 이 때, 다윗의 참모가 말한다. ‘하늘이 내린 기회입니다. 사울을 제거합시다. 그리하면 즉시 당신은 왕위에 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절대 절명의 기회를 거절했다. 그리고 오히려 도망을 치면서 사울 왕을 향해 자신을 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며 떠나간다.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다윗과 그의 군대가 사울의 진지에 들어갔을 때, 잠들어 있는 사울을 만나게 된다. 이때, 그의 참모들은 처음보다 더 강하게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며 다윗의 결정을 재촉을 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은 ‘하나님이 세운 왕이다. 내가 그를 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라며 왕권에 대한 존경심을 표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된다면 자기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합법적인 명분을 제공하게 되는 것임을 주의하면서 스스로 왕위를 찬탈하는 것은 신하된 자의 도리가 아니며, 하나님이 세워주실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믿음을 굽히지 아니하였다.

사울 왕은 이미 악령에 잡혀 있는 상태였다. 악령에 사로잡히면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생각과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악령에게 포로된 자의 인격이다. 결국 사울은 샤먼(영매)을 찾았고, 그들의 주술행위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결국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전사하는 것으로 끝마치게 된다. 그 이후에 비로소 다윗은 국민들의 추대를 받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가 왕이 된 후 나날이 나라는 부강해졌고, 국토는 확창되었다. 국방력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해졌고, 자신이 직접 출정을 하지 아니하여도 충분히 외적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정도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태평성대의 한가한 오후 먼발치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다윗은 그만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그 여인을 범하고 만다. 그리고 그 죄가 발각되지 않도록 완전 범죄를 꾸민다.

그 여인의 남편이 다윗 왕의 충신 우리아 장군의 아내임을 알고 자신과의 관계에서 잉태된 아이를 마치 남편과의 관계로 인한 것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우리아 장군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자신이 범한 그 아내와 함께 동침하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아는 다윗과는 다른 충성된 군인이었다. 왕을 지키는 본분을 다하기 위해 왕궁을 떠나지 않고 숙직을 하면서 지내다 귀대하였다.

첫 번째 작전이 실패하자 다시 궤계를 꾸민다. 우리아 장군을 선봉에 세우고 총공격을 명했다가 군사들을 갑자기 후방으로 빼내어 선봉에 선 우리아가 적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그의 뜻대로 완전 범죄는 성공한 듯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다윗을 찾아온다. 스스로 자신을 선지자라고 소개하는 나단이란 이름의 노인이다.

그는 다윗의 범죄를 낱낱이 고발하고 이를 지적하기 시작한다. 이때, 다윗은 옥좌에서 스스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모든 과오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모든 것이 자신의 죄였노라고 그는 철저히 회개하며 용서를 구한다.

이런 지도자를 가장 존경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왕이 될 수 있으나 왕이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국민과 법)이 세워주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지혜의 사람, 결국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자아를 거부하고 섬기는 자가 되어 하나님과 사람의 종으로서 성실하게 낮아지고, 희생할 줄 알았던 지도자를 존경하는 것이다.

자기의 과오는 깨끗하게 시인하고,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용서를 요청할 수 있는 용기의 지도자, 나아가 왕이란 권력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아니하고 오직 나라와 큰 뜻을 위해서만 사용했던 지도자는 지금도 시대를 초월한 존경을 받는다.

우리의 역사를 보라. 스스로 권력을 장악한 대통령은 비명에 죽거나 유배를 가거나 감옥살이를 했다. 국민에게 부여 받은 시간 모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권력이 되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국민들을 희생시켰고, 자기 자신이 아니면 나라가 융성해질 수 없다는 근거 없는 자만심에 사로 잡혀 갔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혈세와 권력을 유용했고, 방임했다. 이러한 지도자 뒤에는 어김없이 사이비 종교들이 유착되어 있었다.

세월호 사건의 뿌리는 전두환 정권이 있었고, 오늘의 사태 역시 박정희 시절에 키워진 사이비 종교가 그 원인이 아닌가? 영혼과 정신이 맑아야 사리를 바르게 판단한다. 우리에게는 언제쯤 다윗 왕과 같은 사람이 기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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