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날씨가 영하로 내려갔다. 금수강산 내 나라는 사계가 있어 좋다. 창문만 열면 화려한 자연의 명작인 아름다움이 항상 새로운 풍경 되어 다가온다. 하지만 삶이 너무 흥겨우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도 못 느끼고, 삶이 너무 무거워도 계절의 감각이 둔하여진다.

다만 어린아이 같아야 사계가 주는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첫눈이 오면 좋아하는 것은 개와 아이들이다. 눈을 먹기도 하고,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면서 마치 새로운 별에 당도한 개척자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신기해한다. 그러나 어른들에게서는 더 이상 이러한 반응들을 찾을 수 없다.

그저 눈이 오면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이 많은데 어찌하나? 걱정하는 한숨들만 볼 뿐이다. 채소 값, 고추 값이 걱정이고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비닐하우스가 걱정이며, 겨울 내내 필요한 땔감 걱정을 한다. 눈은 걱정거리를 가져오는 불청객이다.

어느 가난한 생활인은 중동에서 노동을 하다 돌아온 터라 오히려 사계가 싫다고 한다. 중동은 늘 더워서 한 벌 옷이면 족한데 계절마다 바꾸어 입어야 하니 의상 값도 만만치 않고 냉난방을 다 설치해야 하니 그 역시도 부담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사계가 있었기에 그 계절에 따라 지혜롭게 대비하고 적응하는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생활의 적응속도 역시 그 어느 민족보다 빠르고 민첩하다. 계절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아니하면 그 결과물을 얻을 수 없기에 재빠르게 적응하고 대비하는 것이 채득된 민족이다. 그 결과 한국인은 어느 곳에 가든지 잘 적응하며 생활한다.

자연환경도 사계의 변화가 있듯이 우리의 삶의 환경도 사계가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삶의 환경이 겨울이다. 경기가 얼어붙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정치도 경직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도 역시 겨울로 접어드는 것 같다.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꿈틀거리고 있다. 브렉시트라고 해서 영국은 영국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EU를 탈퇴하고 있다. 미국 역시 미국다운 미국의 회복을 주장하며 상대적으로 국수주의적 성향이 짙은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었고, 곧 정권을 탈환한다. 일본 역시 우경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지고 있고, 중국은 만리장성을 쌓았던 때처럼 다시 제국화 되어져가고 있다.

분명히 세계가 겨울로 들어서는 것 같다. 겨울에는 물이 얼음으로 변하듯 동일 이데올로기가 뭉치고, 혈통적, 이기적 집단이 단결된다. 결국 이러한 얼음 같은 집단은 부딪치기 마련이며, 날카로운 면이 있어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생겨난다. 19세기로 회귀하는 것 같은 양상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이러한 때, 사람들은 더욱더 감성적이 되고, 외부자극에 쉽게 흥분하여 동화되는 경향이 있다. 19세기에 이데올로기에 쉽게 의식화되고, 정치적 감정싸움으로 세계 대전까지 가는 참혹한 역사를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라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의 극우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을 조선 말기의 민비로 빗대어 보도하고 있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 오락가락 하다가 결국은 탄핵당하는 것을 민비의 죽음으로 비유하고 있다.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더욱더 가옥해질 월동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답답하다. 역사적 의식에서도 1950년 한국전쟁을 남침이니 북침이니 설왕설래하며 통일된 역사의식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다. ‘북침’이라고 교육 받은 청년이 군에 입대하여 총을 북으로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국방의 의무를 한다면 과연 마음과 머리가 일치되지 않고 행해지는 일면의 모를 국방의 행위가 과연 온전할까? 주적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전쟁을 하는 나라가 인류 역사에 과연 있었던가? 아마 우리만이 겪는 일일 것이다.

젊은이들 중에 꽤나 많은 수가 공무원이 되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간을 ‘취업준비’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국가관과 공동체 의식도 없이 그저 편안함을 추구하며 큰돈은 아니지만 안정된 자리를 찾는 것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것보다 앞장선 개인주의자들의 비참한 현실은 아닐까?

자기 개인의 살림이 우선이고, 나라 살림이 뒷전이라는 의식 구조의 공무원은 공무원이 아니다. 그는 국가에 노동을 제공하고, 생활을 하는 생활인이다. 이것이 순국선열 될 사람만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국가는 국토와 국민과 주권이다. 물샐틈없이 지키겠다는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어야 하지 아니하겠는가?

국민도 마찬가지이다. 외침이 있을 때, 우리는 군(軍), 민(民)할 것 없이 모두 일어났다. 참전의 동기는 우리의 처자식과 땅을 넘보는 침략자들을 우리가 몰아내야한다는 아버지적 사명감에서였다. 유관순 열사도 아버지, 어머니가 왜경의 총칼에 희생되는 것을 목격한 나머지 순국의 열매를 맺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겨레 정신이 있었다. 이것이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정신이 너무 무뎌지고 묽어졌다. 응집될 요소가 지나치게 희석되었다. 여기에다 철학은 다원주의이다. 극단적 개인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다. 이렇게 월동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겨울을 맞는 것이 매우 우려가 된다. 겨울을 나야 봄을 맞는데 영양을 비축하지 못한 동면을 하는 곰이 과연 봄에 잡을 깰 수 있을는지 우려된다. 이것이 더욱더 시급히 월동으로 준비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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