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가을 둥근 달을 가로질러 날던 기러기의 나그네 길은 산 아래 사는 소년에게 꿈꾸는 세계로의 길라잡이였다. 어디서부터 날아와 어디까지 날아갈까? 시베리아에서 왔을까? 저 차디찬 동토의 땅에서 날아왔는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나라들을 떠올리며 부푼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마치 철새가 되어본 듯 그들과 함께 날개짓 해본다. 제비가 날아왔다. 초가집 처마 끝에 둥지를 틀었다. 며칠 뒤 알을 깨고 노오란 입들을 둥지위로 내밀면 어미 새는 한시도 쉬지 않고 날라다 입속으로 먹이를 쏘옥 쏘옥 넣어 준다.

한 여름도 그렇게 지나고 마치 이별의 인사라도 하는 듯 전깃줄이나 빨랫줄에 어미 제비, 아비 제비, 새끼 제비들이 까아만 연미복 차림으로 도열을 한 후 다시 저 멀리 고향 강남으로 간다고 인사를 할 때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다시 돌아올까? 정이란 보이지 않는 줄에 어느새 줄 사이는 묶여 버렸다. 어쩌다 소나무 위에 날아와 있던 재두루미를 만날 때면 진객을 만난 듯 왠지 좋은 일이 있을 듯한 희망으로 가득차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닭들이 사라졌다.

어찌된 일인가?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키웠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생계도 넉넉지 않아 사료를 살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조그만 음성으로 돈을 빌려가면서 키웠던 닭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생명 가진 것 굶길 수 없지 않느냐며 곧 달걀 팔아서 갚아주겠노라고 손을 비벼 사정하던 그 양계장 아주머니의 자식과 같은 닭들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살처분을 당했다. 흰 비닐에 싸여 땅속에 무참히 던져진다. 어쩌면 자식만큼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닭들인데 그렇게 무참하게 차디찬 땅바닥으로 던져지는 꼴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해 눈물만 주르륵 주르륵 흘린다.

철새가 원수가 되어버렸다. 오는 철새 막을 수 없고 가는 철새 붙잡을 수 없다. 바람처럼 날아오고, 바람처럼 날아가는 그 철새를 어찌하랴? 그러나 삶의 욕구조차 잃어버리고 아침이 되어도 인기척이 없이 텅 빈 아주머니에게는 원수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멍든 가슴은 어떻게 누가 달래줄까?

미래는 점점 좋아진다고들 한다. 길도 없어지고, 드론차가 하늘을 날고, 호모 로보티쿠스가 신랑이 되고, 신부가 되어 한 가족처럼 되는 시대가 곧 온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과연 인간의 가슴이 로봇의 가슴을 녹일만한 온기가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자그마한 두 날개짓을 하며 수억만리 바람을 이기고, 눈, 빗속을 뚫어가며 새끼 낳고 키우겠다고 이 땅을 찾는 철새는 가슴이 따뜻하기 그지없다.

어떤 새는 사람보다 낫다라는 평판을 받을 만큼 새끼를 지극정성 키운다. 오히려 사람이 사는 안방보다 처마 밑 새둥지가 더 사랑으로 붙잡혀질 때도 있다. 그래서 그 귀찮은 새똥이 떨어져도 둥지 아래 널빤지를 달아주면서까지 참고 함께 동거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매일 허탈하게 하늘만 바라보는 옆집 양계장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정이 싹 가신다. 철새! 오기만 하면 둥지는 커녕 새끼도 못 낳고 키우지도 못하게 아예 원천봉쇄하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드는 것이다. 왜 그리도 못된 균을 가지고 다니는지 애석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전 재산을 투자하여 닭과 오리를 키우던 아저씨는 기약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지 벌써 열흘이 넘었단다.

속이 답답하여 빈 양계장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쉬었다 와야겠다며 나갔단다. 이젠 가을 하늘에 도열하여 날아오고 가던 그 멋진 퍼레이드는 저승사자의 도래처럼 보이고 강물 위에 신접살이 하던 원앙도, 날개를 쫙 펴면 하얀 깃에 검은 선이 우아한 재두루미의 춤도 다 증오의 대상으로만 보인다. 그래서일까? 세상은 살면 살수록 정 붙일 곳이 점점 사라져가고 매정한 생존경쟁의 적들만 늘어나고 있으니 마음은 점점 모래알처럼 낱알이 되고, 흙처럼 부드럽고 엉키게 하는 동심이 사라지니 이 겨울은 더욱더 매몰차고 차갑게만 느껴진다.

누가 잘했던 잘못했던 점점 미워할 일만 쌓여가고, 원망하고, 분노만 가득한 일만 더 많아지니 삶의 소소한 낭만을 누릴 길이 없다. 그저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너도 나도 우리도 너희도 잠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순간의 평온을 덧입지 않을까?

세월이 점점 더해갈수록 사람의 마음마다 낭만과는 이별해야 하는가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의 신비조차 얄미워지고 철새의 춤과 노래에도 별 감동이 없다. 분노의 소리를 질러대야 할까? 멀어져가는 것들에 대한 슬픈 이별가를 불러야 할까? 슬픔이 더욱 우리의 마음 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그래도 어찌하랴?

다시 병아리가 마당에서 뛰어노는 봄을 기다려야지. 개나리 노오랗게 되는 봄을 기다려야지. 이 한 해가 꼬리를 감출 때 새해의 머리가 바다를 이고 우리 곁으로 떠오르고 있다. 떠오르는 해돋이에 소망을 기다린다. 새해에 뜨는 태양은 닭 벼슬 색깔만큼이나 붉고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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