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무아(無我)의 경지가 있다. 심오한 자기 몰입으로 들어가 결국 자신의 존재 그 자체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탈아(脫我)의 경지도 있다. 성경에도 기록된 이 경지는 의식된 자아가 몸 밖에 존재하는지, 몸 안에 거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 무아와 탈아의 경지는 마지막 죽음의 자리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에 증언에서 심심치 않게 거론되기도 한다. 임종 시 자신의 시체를 보았다는 증언이 보도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를 3차원으로 규정한다면 인간은 시공을 초월하지 못하는 삼차원의 세계 안에 갇혀 있는 유한적(有限的) 존재로 볼 수 있다. 결국 제한적 또는 한계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구성하는 영(靈)은 이 삼차원의 틀을 깨고 무한(無限)의 세계로 향할 수 있다. 

그 구체적 방법은 바로 죽음이다. 인간은 육신의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 3차원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이 세상의 법칙인 3차원의 질서와는 전혀 무관한 다른 차원으로 귀속되는 것이다. 자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초월자에게 전폭적으로 의탁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이 3차원의 세계에서 생존법칙의 귀속된 상태에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부정해 버리는 것이다.

성서는 예수가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한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신의 차원에서 인간의 3차원으로 유입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동시에 3차원과 그 외의 차원과의 연결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이는 우리가 속한 3차원에서 초월적 존재로 차원 이동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것을 믿지 않는다. 아니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새로운 길을 스스로 포기하고 3차원을 초월하는 신의 자리로 가려하지 않는다. 결국 그 상태가 바로 3차원에 갇혀 있는 인류의 모습이라 하겠다. 하지만 염연히 우리의 인지감각들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는 초차원의 세계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들의 세계(Worlds of Spirits)’이다. 이 영의 세계에 이끌림 또는 허락됨을 받으면 비록 그 물리적 객체인 몸은 3차원의 범주에 있다하더라도 그 영은 얼마든지 초차원(超次元)과 다차원(多次元)의 세계의 질서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너무 허무행랑한가? 하지만 엄연히 이와 같은 예가 우리의 주변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병을 앓기 시작한다. 병원을 찾아 수많은 검진을 받아도 병의 원인을 찾을 길이 없다. 무심코 들었던 신병이라는 말에 내림굿을 받으니 언제 그랬다는 듯이 그 병이 사라지고 그 병을 고쳐준 내 신에게 사로잡혀 무속인이 되어 어떤 이는 산신령을 모시고, 어떤 이는 아기동자를 어떤 이는 장군님의 영을 모시기도 한다.

이들은 그 신들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영이 순식간에 시공을 초월하여 과거로 이동하기도 어떤 이들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미래까지도 경험하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맹점은 이러한 존재들이 될 때 그의 인격은 사라지고 비인격적 존재로 바뀌게 된다. 이성은 사라진다. 모든 것을 이 영감(靈感)이 집중하고 기인하여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한다.

영감이 이끄는 데로 복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모든 영들이 선하고 좋은 영들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악령을 받으면 그 인격이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와 목적을 초차원의 세계의 능력으로 취하기도 하고 비도덕적으로 방법을 사용하여 극단적 쾌락을 즐기는 방법으로 영력을 사용한다. 때때로 이 악령은 권력을 탐하는데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 유명했던 제정 러시아를 파산으로 몰고 갔던 주인공이 러시아 정교회의 사제였고 훗날 밝혀지기로 악령이 사로잡혔던 자가 아니었던가! 어떤 이들은 이와 같은 일들을 악령의 힘을 빌어 초자연적 행위를 행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그저 이들이 보여주는 초자연적 행위와 현상에 현혹되어 자신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고 마는 주인공들이 되기도 한다. 영의 세계를 알 되 바로 알고, 영을 접하면 내가 영과의 접신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비인격적인 심성이 생겨난다면 조속히 그 관계를 끊어야 한다.

성서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선한 영을 모셔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성서는 이것을 아예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 삼위라고 가르치며 그 선한 영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일찍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 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어가서 초차원의 세계로 가기도 했다. 성서의 엘리야라고 하는 선지자(先知者)는 죽음을 당하지 않고 불 말과 불 병거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직접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사실적 고증자료들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선한 영이 아닌 악한 영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많이 구하게 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영이 정상적인 인격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세상의 빈 영은 없다(There are no men who has no spirit.)

사람의 영혼은 어느 영에게나 지배 받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 즉 초차원에 계신 하나님의 영, 성령을 모시라고 가르치고 있다. 특히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 역시 악령을 만남으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는 범죄를 하였다. 이 영의 반응과 변화는 사람들의 소통 방법이 되는 “말”을 통해 유입된다. 사람이 말을 나누고 전하면 그 화자의 영이 청자에게 침투하게 된다. 이렇게 말을 통해 영을 지배하려는 것이 바로 사탄이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이 언론에 나와 누구에게도 지인은 있지 않는가? 하며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아는 사람은 있다. 나도 지인이 있다. 하지만 그 지인이 어떤 영을 가지고 있는 살아가는지는 그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고(故) 최태민은 악령의 사람이다. 그는 제대로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바른 신앙관도 없었으며, 약하디 약한 사람을 찾아 사용을 챙기던 악령의 영매일 뿐이다. 박 대통령은 아직 이것을 모르는 것 같다. 영 분별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그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악령은 바로 무지하게 하고 거짓을 믿게 하는 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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