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노예와 자유인의 차이는 헤일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자유인인데도 노예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 마음이 부자유(不自由)한 사람이다.

마음이 부자유한 것은 마음이 타자로 하여금 점령을 당한 경우이다. 아직 유치원도 입학하기 전에 스마트 폰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아이가 있다. 처음엔 부모들이 대단하다. 신기하다고 칭찬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우려스러워진다. 게임에 빠져가기 때문이다. 신기에서 우려로, 우려에서 걱정으로 바뀐다. 게임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수준을 중독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마음의 주권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결국 강제 제지할 수밖에 없다. 결국 타자(他者)에게 물리적인 속박을 받아야 하는 경우까지 가고 만다. 이젠 내외(內外)적으로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감시의 대상이 되고, 감독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마음이 빼앗긴 아이는 통제 불가가 보통이다.

비단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른도 게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많다. 게임뿐 만이 아니다. 도박, 그리고 성(性), 정치(政治)에 중독된 사람들도 많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고치지 못할 정신질환자와 다를 바가 없다.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하게 된다. 스스로 도박에서 자유해보겠다고 신체 일부를 잘라 보지만 마음이 빼앗긴 것을 신체에 고통을 준다고 해결될 수가 없다. 마음을 수술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마음을 고치는 의사는 없다.

정신과, 그리고 뇌과학자들이 마음은 ‘뇌’라고 결론짓고, 뇌를 치료하는 치유방법을 적용하여 많은 진전을 보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 ‘뇌가 곧 마음이다’라는 결론은 아직 성급한 단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에 중독된 사람도 약물이나 외과적 처치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점점 정치에 마음이 잠식되고 있다. 농경사회만 하더라도 국가가 국민에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에 더 관심이 컸다.

초등학교(初等學校)시절부터 철저한 애국심을 교육받았다. 이순신, 안중근, 윤봉창, 이준 같은 위대한 순국선열을 존경하고 배워왔다. 심지어는 고려의 충신들 사육신, 생육신의 함자를 암기하여야 국사점수를 딸 수 있었다. 나라가 부르면 순응하여 복종하는 것을 애국이라고 알았고, 애국이 가장 큰 덕목이다. 아마 유교의 가르침 중에 충효(忠孝)사상이 깊이 뿌리박힌 근거를 들 수도 있다. 부모 섬김보다 나랏님 섬김이 우선순위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국민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라는 의식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까지 국가로부터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보니 모두가 바람만큼 국가가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해주므로 국가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가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당연할 것이 그 바람이란 끝이 없다.

거지는 감사할 수 없다. 주는 자는 오히려 감사하지만 얻는 사람은 감사가 없다. 그 욕구를 무슨 능력으로 채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 불만과 원망하고픈 마음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나를 선택해 달라.’ ‘내가 해결하겠다.’고 외치지만 그가 그의 재력이나 능력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결국 그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대도 국민을 사랑하는 것처럼 위장술을 써서 국민의 마음을 강점하려고 한다. 정치꾼이 되어 외치는 공염불을 뉴스라는 이름으로 보도함으로서 사실처럼 인식하게 된다.

언론은 국민의 귀와 눈을 훔치며 시청률을 올리고 국민의 마음을 잘 훔치는 능력이 있다고 하여 여론을 만드는 기능을 통해 제4의 권력으로 부상되어 정치꾼과 말꾼이 합작하여 국민의 마음을 더욱 치밀하게 강점하고 있다.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이 알 권리를 언론이 수호하는 천사처럼 헌신하는 듯하면서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권력을 행사한다.

언제, 누가, 어디서, 언론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줄 의무나 권력을 위임하였는가? 독자가 애독자가 되고, 시청자가 언론매체의 포로가 되어 보도된 보도를 사실로 믿고 맹신하여 자신의 의지나 마음을 상실한 체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누가 저 마음을 강점당한 맹목적 행위를 깨우쳐줄까? 가슴만 타는 것이다. 일제 강점하에서 독립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처럼 정치인의 위장과 언론이란, 새로운 권력의 횡포로부터 자유케 할 과제가 시급한 현안이다.

무릇 지킬 것은 자기 마음의 자유를 지킬 때, 마음이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누군가가 국민의 마음의 밭에 가라지를 뿌려 온통 불만과 불평, 분노를 들끓게 하는가? 이에 편승하여 자기 권력의 야욕을 채우려는 야수들이 천사의 얼굴을 하고 종횡무진 설치고 있다. 국민 각인이 자기 마음을 지켜야한다. 이 때, 바른 판단력과 자기의 자유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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