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대 영 목사

[부천신문]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즐겨했다. 부서진 사기 조각들, 납작스레한 자갈들로 옹기종기 모아놓고 집 모퉁이에 둘러 앉아 자연스레 ‘넌 아빠해! 내가 엄마할게’ 여자아이가 먼저 각각의 역할을 맡긴다.

아빠는 나뭇가지를 주어온다. 엄마는 잡초 잎을 떼어온다. 그리고 씻고, 짓이기며 요리를 한다. 마지막은 빗자루로 서너 아이가 앉을 자리를 말끔히 쓴다. 그리고 ‘우리 밥 먹자’하고 손짓한다.

모두가 모인다. 어느 누구도 자연스럽지 않은 아이는 없다. 냠냠냠 맛있게 먹는 흉내를 낸다. 그리고는 설거지 해야지 하며 엄마 역할을 맡은 아이와 아빠 역을 맡은 아이가 살림살이를 정리하므로 소꿉놀이는 끝이 난다.

산다는 것, 이렇게 먹고, 입고, 자며 사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아예 가정을 꾸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집값이 너무도 비싸다. 평생 돈을 모아도 사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집이 없으니 사랑도 못한다. 집이 있어야 신부를 데려갈 것이 아닌가? 사랑조차도 할 능력이 없다. 홀로 거리를 배회해본다. 젊은이가 사랑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질까?

의식주(衣食住)는 해결되어야 소꿉놀이 같은 살림이라도 할 수가 있다. 의식(衣食)은 해결한다고 하지만 집이 없으니 가정이 이루어질 수 없다.

독재자 카다피가 통치하던 리비아에 한 유학생이 자기 나름의 이야기로 자기나라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것을 보았다.

온 가정이 유학을 갔다가 귀국하였다. 세관에서 ‘당신이 살 집입니다.’ 주소 하나를 적어주었다. 이 유학생 가족은 정부가 지정해 준 집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일정한 자기 집은 없다. 그때 그때마다 국가가 살 집을 마련해 주었다.

수시로 자기 집이 바뀌기는 하지만 별천지 같은 이야기는 별천지가 아니다. 이 땅, 내 조국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복잡한 사회주의니 자본주의 하는 이념과는 거리가 먼 꿈을 꿔보는 것 말이다.

이 12월의 겨울을 어떻게 따듯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하기야 예수님도 유할 집이 없어 어느 마구간 신세를 지셨다. 그리고 평소에도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라고 하셨다.

‘누가 당신을 가난하다고 하였나?’ 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더불어 살도록 세상은 만들어져 있다. 간단하다. 은행에 돈이 흘러 넘쳐도 기업이 그 돈을 사용하여 고용 창출 하지 아니하면 소비자가 생겨날 리가 없다.

소비자 없이 기업이 아무리 좋은 생산물을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판매가 안 되는데 기업이 돌아가겠는가?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소꿉장난이라도 가능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돕지 않고는 살 수 없도록 세상은 구조 되어 있다. 그런데 이젠 서로가 서로 이용하려고 하는데 경영기술을 발전하고 있다.

기본생활도 되지 않는 인건비를 주면서 일하라고 하면 그 사람이 자기를 지탱할 수 있을까? 최저의 생활은 하도록 해줘야 되지 않을까? 그것마저도 보상 못 받는 일군들이 허다하다.

기업인들은 기업인들대로 고민이다. 세계 경제시장에서 원가 절감을 최소화 하고, 제품은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 말도 맞다.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백번 맞는 말이다.

여기다가 고령화 시대는 이미 왔다. 누가 저 어르신들을 책임지랴? 결국 세수를 늘려야 하는 것은 필연적 현실이다. 어느 한 곳 잘못 한 곳이 없다.

다만 정치권만 예외이다. 요즘은 뉴스보기가 힘들다. 보이는 장면마다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는 내용 밖에는 보여 지는 것이 없다.

죄가 있으니 처벌을 받아야 하고, 혐의가 있으니 조사를 받겠지 하고 체념을 해도 보여 지니 우울하고, 눈에 비치니 12월의 겨울은 더욱 차디차다. 대통령을 누가 하던, 장관이 누구든지 국회의원 아무나 하여도 상관없다.

다만 국민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세금을 국민으로부터 징수 받아 살림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우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정부 고위층 뿐만 아니다. 각계 지도자들, 그리고 기업인들이 자기들의 집을 내어 놓아 집 없는 자의 집을 마련하려고 나선다면 12월의 겨울은 따듯해질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자의 리더가 없다. 이웃 나라의 그 국가에서 상위에 속하는 기업 회장이 13평 서민 아파트에 산다. 사원들은 이 사실만 보아도 12월은 여름일 것이다.

내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나그네처럼 내 몸도 사용하다 버리고 떠나는 것이 인생이다.

지도자들만이라도 내핍(耐乏)에서 오는 즐거움, 즐기고 배려로 인한 훈훈함, 나누고 겸손이 섬기는 따듯함만 피어오르게 된다면 12월은 겨울이 아니다. 여름이다.

저작권자 © 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