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영 목사

[부천칼럼] 목련화는 피었다 어느 날 진다. 목련화가 필 때는 가지에서 피어나는 것 같지 않다. 하늘에서 꽃이 내려앉는 듯하다. 어느 눈보라가 치는 날 목련화는 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은 천사처럼 피어있다.

그러나 목련화가 질 때는 여왕이 폐위가 되듯 한스럽고 애잔하게 낙화가 된다. 이 세상에 피고지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마는 목련화가 피고 지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와 나뭇가지에서 자태를 뽐내다가 낙마라도 하는 듯 지는 꽃을 보면 만물이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개나리도 잎이 없이 피고, 산수유도 목련화 같다. 먼저 피지만 목련화처럼 우아하고 꽃잎이 소담스럽지는 않다. 단연 이른 봄 피는 꽃으로는 여왕 꽃이라 할 수 있다. 목련화를 보면서 존재하는 것들의 흥망성쇠를 한 눈으로 보게 하는 듯하다.

알렉산더는 그 당시 제국을 이루었다. 그러나 33살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남긴 여러 일화가 많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언이 유명하다. ‘내가 죽으면 나의 관 밖으로 두 손이 보이도록 하라.’ 알렉산더의 장례행렬이 나갈 때 모든 백성들로 대제국의 왕이 빈손으로 죽는 것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탐욕의 인생을 자유하게 하라고 외치는 근엄한 왕의 행위적 교훈이었을 것이다. 부를 누리는 자나 권세를 누리는 자, 이를 뽐내는 자나 힘을 자랑하는 자, 어느 날 목련화가 낙화하는 것처럼 한을 품고 애잔하게 기울어진다.

사려 깊은 소년이 짝을 정하기 위해 사귀는 소녀에게 마지막 테스트를 하였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 보름달을 좋아하느냐? 초승달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보름달이 좋지 않느냐고 했을 때 그 이튿날부터 절교를 했다고 한다. 보름달을 좋아하는 사람은 기울어진 운명의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명문 가문에서는 딸을 시집 보낼 사돈집에 찾아가 먼저 고지바가지(쌀독에 사용하는 쌀바가지)를 쌀독에 넣어 본다고 한다. 만약 쌀독에 쌀이 없어서 독 밑 에닿으면 그 집으로 시집을 보낸다고 한다.

쌀이 쌀독 안에 차 있는 집은 부잣집이다. 부잣집은 기울기 시작하는 집이다. 잠시 영화와 부를 누릴 수 있지만 곧 쇠퇴할 것이다. 가문의 쇠퇴의 원인을 자부(며느리) 탓으로 돌리면 본인도 힘든 시집살이가 되고, 출신 가문도 그 명예가 손상되므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집과 혼인하여 며느리로 들어가면 가난하니 더 가난해질 염려가 없다. 다시 일어날 것이고, 번성해 질 것이다. 이 때, 그 원인을 자부(며느리)가 좋은 운을 가지고 들어와 가문이 번영되었다고 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가난한 가문으로 시집을 보낸다고 한다.

인생도, 달도, 꽃도 피었다고 지고 흥했다가 쇠하고, 만월이 되었다가 다시 초승달이 된다. 이 원리를 뛰어넘을 수가 없다. 자연의 이치이며, 우주 만물의 원칙이다. 이를 아는 지혜있는 사람은 권력이 있을 때, 가난하고, 미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덕을 베푼다. 죄 있는 자를 용서하고, 빚진 자에게 탕감을 해준다. 덕을 세우고, 쇠퇴하면 그 심은 덕이 다시 그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힘 있고, 돈 있고, 명예 있을 때, 교만하여 약한 자를 억압하고 벌을 과하게 주고, 횡포를 부리면 반드시 원수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 원수가 쇠하여지는 날 복수를 한다. 쇠하여 지는 것도 서러운데 복수를 당하면 비참해지는 것이다. 흥할 때 고난은 겸손케 하고, 오히려 수양하기에 좋아 인격이 고상하게 된다.

쇠한 연후에 받는 앙갚음은 종말로 가든 비극이 되는 것이다. 지혜와 덕이 있는 자는 원수를 갚지 않는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한다. 인류사에 고비 고비마다 해결을 하는 인물은 헌신적 사람들이다. 이타심(利他心)을 가진 사람이 역사를 아름답게 장식해간다.

3월 23일 프랑스 남부 소도시 트레브(Trebes)의 한 슈퍼마켓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추종자로 알려진 인질범이 이미 세 사람을 무참히 살해한 뒤였다. 감정이 극에 달한 범인들 앞에 군경찰대 소속 아르드 벨트남(44) 중령이 자진하여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한 여성을 대신하여 인질이 되었다. 테러범의 총격으로 그는 아까운 생명을 잃고 말았다. 시민을 구하고 희생당하는 벨트남 중령에 대해 프랑스 시민들은 경의를 표하고, 희생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있다.

역사란, 이타심(利他心)있는 사람의 희생 없이 성장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희생 없이 어찌 자녀가 태어나고 자랄 수 있는가? 아울러 어느 공동체나 국가 역시 의로운 희생 없이는 발전할 수 없고, 성숙해갈 수가 없다.

목련화가 피고 지는 것처럼 인생은 필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다. 피고 지는 기회를 자기희생과 헌신으로 피고 질 때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철학, 자기 유익을 위해 피고 지는 것은 목련화의 낙화가 아름답지 못한 것처럼 아름답지 못한 인생이 된다.

자기 철학과 사상을 기준하여 타자의 삶을 지게 하는 행위는 자기 멸망의 역사를 조장하는 것이다. 그는 타의에 의하여 낙화가 될 수 있다. 올해도 목련화는 피고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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