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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에 물들면

부천신문 l승인2018.08.07l조회수 :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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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대 영 목사

[부천신문] 북한의 겨레가 사회주의 이념으로 물들게 한 가장 큰 정책은 토지의 사유화의 철폐였을 것이다. 

신분이 나뉘어져 있고, 지주와 소작이 나누어진 엄격한 조선시대의 의식을 깨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45년에서 1948년 사이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주의 땅은 없다. 경작하는 자에게 대가 없이 공동분배 해주자 막스 레닌의 집안사람들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남의 토지를 빌어 농사를 짓는 이의 평생 소원이 있다면 자기 땅에 씨를 뿌리고, 가꾸어서 추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당대에는 이룰 수 없는 꿈 같은 일이었고 사람의 태생까지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누어 놓았다.

이렇듯 쉽게 넘나들지 못하는 간격이 하루아침에 철폐되고 지주는 인민재판을 받고 논밭전지 문서는 국가가 소유하고, 공동 생산하는 사회가 열렸으니 천지개벽에 공평한 사회를 이를 낙원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당시에 북에 살던 지주계급과 종교인(특히 기독교 박해가 심했다)들은 월남을 많이 했고 재리(財利)에 밝았던 그들이 한국경제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그들은 월남하면서도 불안했고, 한국전쟁을 겪으며 언제 다시 공산화가 될지 모르는 불안함에 태평양을 건너 이민 간 1세대가 되었고 한국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일찍이 외국에서 자리를 잡고 디아스포라(이민간 이스라엘 사람)가 되어 세계인으로 활동한 사람도 많다. 

어떻게 전인격적으로 섬기던 지주와 양반계급을 인민재판에 회부하여 몰락하게 할 수 있었던가? 누구에게나 균등 분배하는 ‘그냥’주는 배급제도가 국가 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가없이 주는 것을 ‘그냥’ 받기 시작하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변한게 되고 주는 자에게 의존하는 습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야생의 개가 애완견으로 소위 길들이기의 기초단계가  ‘그냥’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이다. 

매일 그 자리에 가면 먹을 것이 있다면 굳이 생존경쟁을 할 필요가 없고 야생성 또한 사라지고 자신도 모르게 종속되어 가는 것이다.

지능이 높은 인간은 길들여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논리가 얼마나 인도적인가 누구든지 공평이 나누는 사회의 실현 이것은 인류가 꿈꾸던 이상의 세계이다. 

그러나 나눔의 주체 계급 또한 권력인 것을 간과했고 세계적으로 2억 정도 생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 공산화는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이성적으로 타당성 학습시키면 인간의 본성인 욕망이 선한 의욕으로 변할 것이라는 믿음은 빗나갔고, 인간이 ‘그냥’에 물들면 생산의식이 떨어진다는 것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동유럽, 아시아,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 지금은 어디에도 공산국가가 없다. 
사회주의 이론은 이론일 뿐 결코 현실은 이론과 동일한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만 뼈저리게 각인 시켰을 뿐이다.

중국의 정치는 사회주의 국가지만 시장은 자본주의 시장이다. 구 소련 역시 민족중심으로 해체되었고 모든 나라들이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유일하게 북한만아 막스 레닌주의를 넘어선 사회주의 종교가 탄생하여 지금도 지탱하고 있다. 

국가 지상주의 이다보니 통치자 신념에 모든 인민은 도구화가 되어 있다. 그 때 그 시절 3년(1945년~1948년)의 그냥 주는 미끼를 물었다가 영원히 김씨 가문의 종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김씨 가문이 주는 대로 먹고, 노래하는 대로 춤을 추어야 생존 가능한 이상한 공동체가 되어버렸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M’이라고 하는 신학자가 있었다. 
그는 늘 "예수 사상을 가진 사람은 익명의 크리스챤이다" 라고 외치곤 했다. 예수 사상은 타자(他者,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북한의 고통 받는 인민을 해방하는 것은 통일 밖에 없다. 분단으로 인하여 북한 인민이 고통 받고 있으니 남한의 크리스챤들이 희생해야 한다. 북한이 적화통일 하는데 희생당하는 것이 분단된 겨레가 하나 되는 유일한 길이다. 적화통일이 예수 십자가를 지는 길이다. 그리고 그들이 민중이다라고 외쳤다. 

착한 사람들은 남에게 ‘그냥’ 주는 것을 좋아하고 ‘그냥’ 자신을 주는 사람들은 의식화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 ‘그냥’ 받는 것에 길들이는 것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전기료도 ‘그냥’ 깎아 주고 영업하는 사람에게도 ‘그냥’ 보조해주고 노동자에게도 ‘그냥’ 준다.

‘그냥’ 주는 착한 사람이 착한 사람일까? 야성을 빼앗아가는 자이다. 포획자이다. ‘그냥’ 전기료를 담당해 주겠지. 냉방기를 밤새 가동하고 곤히 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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