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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이 두렵지 않는 종교인

부천신문 l승인2018.09.04l조회수 : 3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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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대 영 목사

1337년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의 프랑스 왕위 계승 분쟁으로 시작한 100년 전쟁은 1453년까지 116년 동안 계속되었다. 

주요한 전쟁터가 프랑스 지역이었던 만큼 100여년간 거듭된 전쟁은 프랑스 땅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국가보다는 종교를 중심으로 살아가던 사람들도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했다.

그러는 사이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럽게 근대적 국가의식과 애국심이 생겨났고, 100년 전쟁 이후에 의식의 변화 속에서 프랑스를 구원한 잔 다르크가 탄생하였다.

잔 다르크는 프랑스 동레미에서 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이 독실했던 잔 다르크는 16살 즈음 천사의 계시를 들었다. 그녀는 대천사 미카엘, 성 카테리나, 성 마르가리타 계시를 받았다.

1429년 왕위 계승권을 빼앗긴 샤를 7세를 도와 오를레앙을 해방시키고, 프랑스에서의 국왕 대관을 실현시켰다. 그러나 1430년 국왕 측근의 배신으로 콩피에뉴에서 영국군에게 붙잡혀 1431년 이단자로서 화형을 당했다.

잔 다르크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고, 들녘에서 피를 다 뽑히고 결국은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 종교재판에서 그에게 질문한 질문에서 신앙적 답변은 모두 유죄가 되고, 불경죄로 유죄를 받는 재판의 내용이 지금도 프랑스 하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종교인이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참신한 신앙인이 신을 두려워하는 잔 다르크를 유죄로 몰고 이단시하여 처단하는 악행을 단행하는 행위는 신(神)을 두려워하지 않는 종교인만 할 수 있다는 언제나 역사의 어두운 면을 장식하고 있다.
현금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천주교까지 포함하여 자신들이 신봉하는 신(神)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불교는 자비가,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가, 천주교 역시 사랑과 용서가 가장 큰 신(神)의 뜻이다.

그런데 왜 분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개혁의 뜻은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 원점으로 돌아가는 제도나 법이나 도덕이나 단체가 개혁되자는 것이 아니다.

각 개인의 마음이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종단의 법을 고치고, 운영체계를 고치고, 행정 조례를 고치자는 것은 종교적인 차원에서의 유효한 일이 아니다.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M’교회의 대물림 문제를 놓고 교단 신학교 학생들까지, 교수들이 앞장서서 수업 거부까지 하게 하고 있다.

비판하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 용서하되 무한하게 용서하라고 가르친 예수님의 말씀은 두렵지 않다. 대물림은 막아야 한다. 재산이 많은 교회의 주인이 누가 되어야 하느냐만 관심이 있다.

농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배운 것은 넉넉지 않은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큰 장로교회를 이룩한 자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돌을 던진다는 것이 그들의 열정이다.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에게 데려와 격분하여 정죄하는 사람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분을 기독교인들이 주님으로 고백하는 분이다.

신도들의 마음에 증오와 시기와 질투로 가득차서 행악을 하는 것을 보며, 종교의 종말이 가까운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를 탈종교시대라고 한다.

인간의 이성이 인식할 수 없는 존재를 존재한다고 하지 않겠다는 철학적 양심이 지배하는 시대에 종교는 지금 뒷마당에 내밀려 있다.

목사를 양육하는 신학대학 교수들까지 자기들의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정죄의 돌을 자기들도 들고, 제자들에게도 들자고 하여 함께 던지고 있으니 뒷마당에 쫓겨난 처지에 이젠 사람들의 마음에서 완전 퇴출을 당하려고 작심한 자해행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득도(得道)를 위해서 출가하여 자기를 찾고, 성불(成佛)을 이루는데 목적은 두지 않고, 스님마다 대자대비한 심성은 송두리째 내버린 체 날카로운 비수로 스스로 자해를 하면 누가 불자가 되어 성불(成佛)하겠다고 정진하겠는가? 

천주교도 마찬가지이다. 낮은 자, 섬기는 자, 종으로 오신 예수이신데 교황이란 직책이 교회에 왜 있어야 하며, 독신으로 성직 수행하겠다고 법을 정하여놓고 성직자가 성추행 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교황 자신도 성추행 자를 옹호했다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에 대해서 말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해서 그의 행위가 영원히 미궁으로 사라질까? ‘회개하면 용서한다.’고 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종교인이 아닐까 한다.

자기가 믿는 신(神)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만사가 두려워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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