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대 영 목 사

[부천신문] 나이는 53세 부명중학교에서 조기축구를 하다가 가슴을 안고 쓰러졌다. 함께 축구를 하던 동료들이 119를 부르고 10분도 채 안되어 병원 응급실로 다시 얼마 후 중환자실로 옮겼지만 의식 불명으로 며칠간 지내다가 사망했다. 

어저께 일이다. 24살 공익근무 요원으로 복무하던 청년이 출근시간 건널목을 건너다 자동차에 부딪쳐 20분 만에 병원 응급실로 옮겼지만 3일만에 사망했다. 의사의 말은 너무 많이 다쳤다고 한다. 

병원의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 자신이 수련한 만큼의 의술과 병원의 장비와 시스템만큼 서비스할 뿐이다. 의사라고 해서 모두가 만능은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서비스를 할 뿐이다. 

그런데 환자 측 입장은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이 끊어지면 불신과 원망, 그리고 극한 피해의식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사람을 너무 지나치게 믿으면 언젠가는 배신감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의 능력과 정신은 한계가 있다. 자기 이상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결과만 놓고 환자는 평가를 하기 마련이다.

사회는 점점 노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급한 질환이나 사고가 생겨나면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병원에 간다고 해서 모두 치유될 수가 없다. 치료 가능한 질환이 있고, 전혀 치료할 수 없는 질환이 있다. 

더군다나 노인성 질환은 모두 신체 기관이 노후화되어 회생시키기 불가능한 상황도 많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났으면 죽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더 살려고 하고, 무슨 병이든 모두 치료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일 뿐 모든 병을 치료받을 수 없다. 연로하면 스스로 죽음을 맞아들일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옛사람들은 객사를 불운으로 생각했고 죽음은 자신의 집에서 맞는 것을 원칙으로 알았다. 대가족 사회에서는 가능할 수가 있다. 간병할 인력도 많고, 그 당시의 도덕성은 충효(忠孝)사상이 강하여 정성껏 간병을 받다가 자연사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 사회이다. 이러한 연고로 복지시설에 의탁하는 경우가 많다. 복지시설에도 간병은 사람이 한다. 소명의식과 사명의식이 투철한 복지사나 요양사가 만나지면 이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 

복지시설을 경영하는 목적이 대부분 이익을 위해서이다. 근무하는 복지사, 요양사도 노동자이다. 급료를 위해 근무하고 있다. 그러한 분에게 분에 넘치는 간병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만큼 섬길 뿐이다. 

노인 복지시설도 천층만층이다. 시설이 보다 잘된 곳에서 영세한 시설까지 다양하다. 그 시설에 따라 비용 역시 다양하다. 지나친 자본주의적 생각인지 모르지만, 비용만큼 서비스를 받으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천사도 없고, 헌신자도 없다. 업무를 수행하는 성실성만 갖추면 만족해야 한다. 

요양병원보다 요양원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흉흉한 소문이 많다. 그러나 어찌하랴? 본인이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면 감수하고 의탁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젠 마음을 낮추고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자기만의 특별한 대우를 바라는데서 불만과 불평이 생겨나고 배신감이 생겨나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정보사회에서는 자본주의 후기 시대라고 보면 된다. 모든 매사가 대가에 준하여 받으려고 하는 평상심(平常心)으로 돌아가서 보통 사람의 위치에서 익숙해 져야한다. 마치 태엽을 감는 시계처럼 태엽이 다 풀리면 시계는 멈춘다. 내가 지불한 대가만큼만 바라고 그 이상 바라지 말라. 그리고 자족 할 수 있을 때 살만한 세상이 당신을 맞아줄 것이다. 

가족사(家族事)도 마찬가지다. 나의 남편은 도덕군자이어야 한다고 기대하지 말라. 나의 아내는 천사가 되어야 한다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가 위해주는 만큼 위해준다. 심은 대로 거두는 농사처럼 사랑을 받기 전에 사랑을 먼저하고 난 후 체념을 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싹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꽃도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자녀에게도 너무 큰 과욕의 꿈을 꾸지 말아야 한다. 자녀도 독립된 인격이다. 신동도, 영재도 아니다. 그가 자라는 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필요를 요청할 때 힘닿는 데까지 도울 뿐이다. 세계를 움직일 영웅이 될 것이라고 꿈꾸지 말아야 한다. 자녀의 어깨가 무거워져 쓰러질 수도 있다. 매사에 과다하게 과용하지 말고 지나친 기대를 걸다보면 배신감과 실망감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기대보다 큰 열매가 얻어지면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 웃으면 되지 않을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도 마구간 말죽통에 태어났다. 스스로를 낮은 마음으로 살아보자. 하나님이 사람 되고 사람에서 종이 되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고 죽기까지 이웃을 섬기려고 부활의 신비를 이루셨다. 낮아질 줄 아는 사람만이 크리스마스의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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