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정보(情報)를 생산하는 것은 증인이다. 

헬라어로 ‘마르튀래스’라고 한다. 이 말의 어원 '마르튀스'의 뜻은 순교자를 말한다. 증인이 되어 증언을 하는 것은 순교를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증인은 자신의 주관이 배제되어야 한다. 오직 본대로, 들은 대로, 경험한대로 철저한 객관적 사실만 전하여야 증인이 되는 것이다. 사실을 사실로 전한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관점이 있으며, 자신의 경험이 있다. 눈으로 본다. 귀로 듣는다. 손으로 만진다. 그러나 자기의 내재된 정보로 인식을 하는 것이다. 만약 자기의 뇌에 정보가 전혀 없다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판단도 못할 것이다.

컴퓨터에는 데이터가 내장되어 있다. 내장된 데이터가 없으면 데이터가 없다고 한다. 컴퓨터는 모른다고 하지 아니한다. 자기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입력하면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지식이 있고, 자기 경험이 있으며, 자기의 정신세계가 있다. 결국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고, 들은 대로 말하고, 경험대로 말하라고 하지만 인간의 지각 기관에 입력되면서 자신의 관점대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증언을 하자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주관을 모두 지우고 마치 카메라처럼, 녹음기처럼 그 순간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실을 정보화하여 저장하였다가 그대로 다시 전달하여야 정보가 되는 것이다.

정보생산이란, 죽음을 각오한 순교자의 자세로 역사 앞에 서서 증언하지 아니하면 정보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거짓 정보거나, 왜곡된 정보거나, 오류된 정보거나, 의도적으로 연출된 정보에 불과하다.

이러한 정보는 정보가 아니다. 정보 수집자의 정보 수집 자세가 순수해야 한다. 카메라의 렌즈에 오물이 있다면 바르게 사물을 촬영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이다. 정보수집자의 주관을 내려놓고,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수집하려고 하지 말며, 자신의 사상과 철학이나 이상을 모두 내려놓고, 경험한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순수정보의 생산이나 소비 행위가 불가한 상황에서는 정보다운 정보를 생산해 낼 수가 없다. 매스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는 퀴즈문제 풀이처럼 사실을 얻기가 어렵다. KBS가 정부기관의 홍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보도나 방송프로그램이 바른 정보를 전달하지 아니하므로 시청자들이 시청료를 내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다.

S 공중파의 보도시간에 사실을 밝힌다고 하면서도 방송국 자체의 보도를 합리화 하는가 하면 신문 역시 보수와 진보로 갈리어 같은 사건이라도 전혀 다른 정보를 쏟아내는 것을 보면 현대를 정보홍수시대라고 하지만 홍수 중에도 맑은 물이 없다는 뜻이다. 홍수 중에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생명을 잃는 경우와 같은 현실이다.

정보 소비자들은 바로 이러한 정보 고갈의 상황에 이럴 바에는 차라리 자기 주관을 주장하는 개인 유투브나 개인이 생산하는 정보를 양방향으로 수집하여 믹스(혼합)시켜 그 중에서 중도를 취하는 어려운 작업을 하여 정보갈증을 해소해가는 소비자도 많다.

일제 36년간의 보도통제로 인한 편집된 정보만 접해야 했던 시절을 암흑기라고 한다. 군사독재시절의 정보 통제로 인한 암흑기가 있었다. 문민정부에서부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여 큰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특히 진보정부에는 더욱더 더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더 캄캄하다.

지금 민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중차대한 문제가 시초로 일어나고 있다. 지금도 정보통제 및 연출한 정보를 고의로 유출하기도 하며 실제 집권자들의 이상을 이루기 위한 정치를 하면서도 국민을 위한 정치로 포장하여 보도하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권력의 횡포의 구실을 삼고, 사생활 또는 무한 털이를 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의제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ICBM의 개발중지로 바뀌었다고 하기도 하고, 북한의 핵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자국의 안전이 문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소련, 일본의 견제를 위해서 북핵에 대한 비핵화는 중요하다고 외치기도 한다. 미국이 국익을 위해 미군철수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것은 미군주둔 비용의 부담을 한국에 증액시키기 위한 압력수단이라고 하기도 한다.

정부가 고의적으로 미군 철수를 방임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북한의 제제를 푸는 것은 북한을 오만하게 한다. 그러나 결국 북한과 미국이 마주 앉아 미국의 국익만 중심의제로 협상한다고 하면 두 영수 회담 데스크는 한국의 운명을 논하는 자리가 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 그토록 부산스럽게 대통령을 위시해서 전 정부가 북한을 위한 소란을 떨었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증인이 없다. 그래서 증언도 없다. 위의 논 열거는 예제이다. 분석해 보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오늘의 정보소비자들의 입장이다.

정보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있으면서도 정작 진실한 정보에는 목말라 있다. 정보가 없으면 나갈 길을 스스로 찾지 못하기 때문에 타의에 의해서 끌려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희망하는 존재다. 정보가 없으면 희망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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