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역사는 역사이다. 다만 사관에 의하여 역사는 또 다른 역사로 변신할 수 있다. 제주 4.3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하더라도 그 사건을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절박한 시대요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사람들은 이 사건을 ‘가시’라고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비참한 현실 앞에 고통 받고 있을 때, 누가 나의 이웃이 되어줄까? 라고 실낱같이 희망하는 사람은 그가 사마리아 사람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선한 이웃처럼 생각되면 받아드렸던 면도 적지 않다.

결국은 부딪쳤다. 그리고 희생되었다. 남은 것은 아픔뿐이다. 그 아픔이 역사일까? 추구했던 이상을 위해 가해했던 자들의 행동이 역사일까? 라는 물음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아니한다. 다만 아프다면 위로하고, 쓰러지면 일으키고, 억울하다면 들어주며, 어깨를 나란히 하여 함께 걸어주는 것은 민족의 치유에 유익한 것이다.

상처는 싸매주고, 어루만져 주고, 이미 지난 과거를 되돌리지 못한다면 ‘옳다’고 민족사에 기여했다고 인정하고, 내일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 역사란, 정의의 역사라고 하지만 보는 시각마다 다르고, 해석마다 다를 수 있으며, 어떤 시대에서 그 시대를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작금에 와서 우리나라의 국적이 북한이냐라는 물음에 매우 소수만 동의했다고 한다.

외고집 통일만 바라는 사람들은 통일꾼들을 잘 키웠다고 고무하고 있을 것이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사람들은 망국의 조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미래를 열어가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광주 5.18 사건도 그러하다 사람이 많이 죽었다. 다쳤다. 고통을 당했다. 바로 나의 형제요, 나의 가족이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아픈 사람은 싸매고, 위로하고, 인정하며 토닥거려 주어야 한다. 성격이 과격하여 먼저 싸움을 걸어온 사람이 다했다 하더라도 치유를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말문을 열고 과거는 망각에 묻고, 새로운 희망의 약속을 서로 해야 한다. 설사 북한에 의한 공작 작전이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입을 다물고, 등을 쓰다듬고 어깨동무를 하여야 한다. 이데올로기 논쟁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우리는 지금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코앞에 다가왔다.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치달아가고, 일본이 우경화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세계 경찰의 배지를 떼고, 자국 이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현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세계가 모두 우리의 경제적 경쟁 국가들이다.

1950년 한국 전쟁 이래 70여년 동안 잘 살아 보자고 너나 할 것 없이 땀을 쏟고, 피를 쏟고 달려와서 지금 한층 탑을 쌓았다고 해야 할까? 수출 경제 10위권을 넘나들고 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인줄만 알았던 한국은 뜨거운 정오의 나라를 넘어 햇살 뜨거운 정열의 나라로 세계인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발전가도를 달리던 우리가 한에 맺힌 한풀이를 시작하여 한풀이가 또 새로운 한을 만드는 파국으로 돌아간다면 해변의 모래 탑이 되고 말 것이다.

중국의 모택둥은 수억의 국민을 기아선상에서 죽게 한 지도자다. 그러나 그의 동상과 초상화, 한번 찢는 사람이 없다. 문화혁명이라고 하는 자신의 심장을 자신이 쫓는 광란을 피운 사람이지만, 역사는 단죄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로 단결되어야 10억이 넘는 식구가 먹고 살 수 있다.

대동아 전쟁의 주범인 일본의 천황은 오래오래 살게 내버려두고 군 장성들만 전범으로 체벌한 연합사령부의 조치 역시 상황 윤리를 원용했다고 본다. 절대 윤리가 맞다. 그러나 상황을 참작하여 인간 건강에 유익하다면 굽은 길로 가는 것이 지혜인 것 같다.

영국에서는 이유 없이 경찰이 달리면 벌점을 먹는다고 한다. 경찰이 달리면 국민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정의라는 이름의 단죄는 필요하다. 그러나 정의로운 단죄가 또 다른 한을 만든다면 분노가 쌓이게 되고, 다시 복수의 한을 만든다.

가장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의를 신앙하는 자이다. 자신의 의만 의라고 믿는 신앙자는 필시 독재자가 된다. 수많은 피를 흘리게 하는 원인자가 되고, 자신 역시 극악한 자로 비극의 종말을 맞는다. 사방에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없게 하는 요인들이 이웃이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부터 하나가 되어야 하겠다.

이젠 한풀이는 접고 웃으면서 싸우는 경제 전쟁에 힘을 쏟아야 후손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 좌우로 갈라져 있는 이상 부흥은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어야 한다. 시급하다. 지난날을 민족 치유의 가슴으로 포용하고 화해의 가슴에 모두를 옳다하고 내일을 오늘 안에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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