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대영 목사

[부천신문] 한 소년이 무지개를 향하여 뛰어갔다. 그러나 무지개의 실체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무지개를 향하여 뛰어가겠다고 말씀하신 은퇴 교수님이 계셨다. 

학문의 세계에선 충분히 듣고, 이해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선 가장 위험한 생각이다.

독일의 1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참혹한 가난과 고통을 겪게 되었다. 전쟁에 패전한 국가는 전쟁으로 인한 침략 당한 나라에 보상을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을 수행하기란 여간 무거운 짐이 아니었다.

초근목피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혜성 같이 나타난 육군 부사관이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였다. 전쟁 패전국으로서 전 국민이 보상의 멍에를 지고 자국생존도 불가능한 고통을 당하니 차라리 다시 총과 칼을 들자. 그리고 다시 침략하자.

다음의 전쟁에는 승리의 면류관이 우리들의 것이 될 것이다라고 외치며 국민들의 마음에 악한 유혹의 씨를 뿌렸다. 예상했던가? 아니했던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나치당의 국민 지지율은 수직으로 높아졌고, 결국은 히틀러는 총통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가히 신(神)과 같은 신뢰를 국민으로부터 받았다. 세계 제2차 대전의 전범이 된 것이다. ‘위대한 독일 국민이여, 다시 총과 칼을 들자.’라고 외친 이 말은 무지개 빛 유혹이었다. 세계 2차 대전 역시 패전을 하였다. 아돌프 히틀러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한 때 우리나라와 같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어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장막이 쳐졌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독일을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루었다. 가장 국민들이 ‘옳소’다하는 말은 무엇일까? 국가가 나라 곳간을 열고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배급해 줄 때일 것이다.

특히 젊은 날에는 경제적으로 부족한 때다. 그 젊은이들에게 무상으로 국가가 돈을 나누어준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무지개를 보고 뛰어간 소년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기분일지도 모른다.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현금 배급은 양귀비꽃이 아름다우나 그 잎이나, 줄기나, 열매를 먹으면 마약이 되듯이 점점 자존심은 약화되고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있는 자신을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란 성구도 있다. 그러나 일할 자리가 없어 일을 하지 못한다고 호소하는 오늘의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넉넉히 만들어 주겠다고 선언한 공약의 장본인도 바로 그 사람이다. 일자리가 과연 없을까? 아니다. 젊은이의 기호에 맞는 일자리가 없을 뿐, 일할 자리는 많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중소기업의 경영자들은 사람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는 본능이 있다. 그리고 항상 효율적인 자기 경영의 본능도 있다.

자신의 기호에 맞지 않는 일자리가 없다고 투정을 부릴 때, 그 때 일하지 말라라고 하면서 현금 배급을 주시는 분이 얼마나 존경스럽고, 고마울까? 아예 영구 대통령으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가진 또 다른 얼굴이 있다. 수년전 세무 공무원이 종결한 세금을 지금에 와서 다시 들추어서 징구당하는 선량한 국민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뿐만 아니라 정부가 세금을 더 걷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한 자의 것을 가난한 자에게 강제로 나누어 주게 하는 할빈당인지 모르지만 전 국토의 공시지가를 올리고 오른 공시지가에 세금을 부가해서 징구하니 얼마나 많은 세수가 걷힐까?

개국 이래 현 정부가 이룬 세액이 최고액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세금을 과다하게 징수하고, 철저하게 징수했다는 증거이자 열매일 것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세금을 흡혈귀처럼 짜내어 젊은 층에게 현금으로 배급을 한다는 것은 전 국민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다.

세금은 즐겁게 내도록 하여야 한다. 세금을 낸 국민은 자기가 낸 세금이 적절하게 쓰일 때, 세금을 더 내고 싶을 것이다. 기부가 그러하지 아니한가? 기부한 재원이 목적 사업에 제대로 쓰이면 기부한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다시 기부할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일한 자의 것을 짜내어 가서 일하지 않는 자에게 무상 배급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금을 내고 있는 납세자가 기뻐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무지개(이상 utopia)로 여기며 쫓고 있는 이상주의자들을 이론의 세계에서는 무탈한 상상이지만, 엄연한 현실세계에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삶의 질을 저급하게 한다는 것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알 수 없다.

66시간 기차로 달려가 정상회담을 끝내고 빈손으로 다시 66시간을 달려가는 한 지도자의 모습이나 무지개를 쫓는 자들이나 ‘무지개는 없습니다.’라고 허탈하게 은퇴한 그 분이나 동일한 입장이 될 것은 예측확연한 일인 것이다.

‘그래도 무지개를 향하여 달리겠다.’ 이분이 중국의 대사로 가실지 모른다고 한다. 과연 이상세계를 거닐 듯 외교를 해도 될까? 그러나 정치는 자기 자신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함께 걸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모든 국민들이 허탈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땅을 치고 통곡할 동행자들을 생각해 보면 지금이라도 무지개를 쫓는 일을 중단하고 엄연히 현실에 합당한 괘도 수정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이 역사와 진리가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 혼자라면 얼마든지 하시라.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함께 가야 할 약속(헌법) 공동체에게 강권하지는 말라. 무지개는 없다라고 한 퇴임 교수의 말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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