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경기도 교육의회는 꿈의 학교를 시작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학생이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치므로 말미암아 학습 동기가 충만한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일생동안 연마하고 싶은 것을 학습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학습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커리큘럼(curriculum)이다. 교육기관에서 교육계획에 따라 시간표를 설정하고 일정한 과목을 학습자에게 교육하는 교육일정이다. 그래서 교육과정이라고도 한다.

커리큘럼의 틀 속에 갇혀서 하고 싶든, 하기 싫든, 학교를 졸업하고자 하면 이대로 따라서 학습을 하여야 했다. 그런데 이 커리큘럼이란 틀을 깨고 내가 하고 싶은 학습을 한다는 것만 하더라도 하늘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한 어학의 천재성을 가진 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수학을 전혀 할 수가 없다. 아무리 학습해도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 도대체 무엇에 써먹으려고 이 수학을 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수학 때문에 과목낙제를 하기도 했다.

대학진학에서는 수학시험을 보지 않는 대학을 지원하다보니 소위 삼류 지방대학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지방신문 기자로 지내다가 유신시절 보안사범이 되어 그 마저도 그만두고 폐인처럼 살아가던 선배를 떠올린다.

그 당시 꿈의 학교처럼 하고 싶은 과목 위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면 그러한 불행한 일생을 살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이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왜 제대로 홍보를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버스 옆구리에 대문짝처럼 경기 꿈의 학교라는 홍보판만 보였을 뿐이다.

학습자 위주의 교육 보다 더 좋은 교육이 어디에 있을까? 이를테면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 30명이 모이면 축구 감독을 보내주고, 그리고 그 그룹의 운영비도 지원한다니 신천지 새 시대를 맞는 것만 같다. 그런데 시작부터 뭔가 아쉬움이 있다. 왜 관주도인가라는 것이다.

인류사회의 문화 중에 가장 뿌리 깊은 것이 종교이다. 종교의 그 성격상 자신이 믿는 진리를 더 많이 전하여 더불어 동일한 진리의 사회를 이루기를 원한다. 기독교 같은 경우 기독교의 신학의 거두라고 할 수 있는 아우구스티누스는 AD 426년에 로마가 멸망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상상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The city of God)이다. 세계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두 되기를 바라는 것이 기독교 선교의 목표이다. 이러한 기독교 교회들에게 꿈의 학교를 권장한다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포부를 가진 종교인들이 저마다 꿈의 학교와 신자 교육 시스템과 접목시켜 사회 전역에 꿈의 학교를 개설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공간도 있다. 자원봉사자도 있다. 그리고 비영리 공동체이므로 그 토양이 옥토 중에 옥토이다. 그런데 어느 교육 공무원이 교회를 순방하면서 꿈의 학교를 홍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왜 관주도 정책은 시민의 심층으로 파고들면서 시민들이 참여하도록 자기 일처럼 열심히 설득을 하여 국가의 시책이나 국가의 사업이 성공하는데 적극적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또 하나는 기존 학원과의 연대이다. 학원의 가장 큰 짐은 학원 공간의 비용이다. 전세든, 월세든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학생들을 모집하여 가르친다. 만약 학교가 수업을 마치고 하는 방과후 학습도 학원을 경영하는 분들을 유치하여 각 과목이나 스포츠나 예능과목의 취미자 위주로 선발하여 운영하게 하고, 학원 강사의 비용을 지불해 주기만 한다면 과연 사교육이 흥왕할 수 있을까? 아마 사라질지도 모른다.

‘스카이 캐슬’이란 연속극에서도 안타까운 부모의 지나친 교육열의 삐뚤어진 모습을 방영한 바가 있다. 자녀 인격이나 자녀의 소질이나 자녀의 취미를 무시하고, 오로지 부모의 꿈을 이루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은 사회의 어두움을 드리우는 결과까지 낳게 된다는 절규였다.

학원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꿈의 학교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서로 협의하고, 함께 더불어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아보았는지가 의심이 된다. 유치원 문제도 그렇다. 사립유치원일 경우 자신의 재산을 수십억 투자하여 유치원을 개설하고 운영한다. 그런데 공립학교 교육공간을 마련하는 것처럼 공간을 마련해 준다면 유치원 운영비는 관치에 맞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비용은 지원하지 않고, 물론 교육법에 맞게 학교 운영을 강요하고 있다. 사립 유치원에게도 꿈의 학교를 접목할 수 있을 것 같다. 꿈의 학교를 경기도가 적극성을 가지고 앞으로 운영하고자 한다면 대한민국 교육 체계의 혁명이 될 것 같다.

‘학습자 위주의 교육,’ 몇 천번 들어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막힌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다. 이 좋은 학습 방법을 실제 뿌리 내리게 하자면 시민들과 교육에 실제 종사하는 교육전문가들과 충분한 의견 교류만 있다면 성공적으로 꿈같은 꿈의 학교가 성공될 것만 같다.

그러나 생색내기라든지 아니면 전시 효과적 제도라면 얼마 있지 않아서 슬며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공무원은 제도의 성공보다 자신의 생활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이 꿈의 학교를 꿈처럼 이루기를 바란다. 아직도 교장의 안일무사 정신이 교정의 문을 닫고 폐쇄적이고 그 권위주의적인 학교가 있다. 꿈이 없는 교장선생님은 교정을 떠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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