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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칼럼] 6월의 이름은 자유다.

부천신문 l승인2019.06.12l조회수 :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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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1950년 6월 25일 그 날은 동족끼리의 전쟁을 치룬 슬픈 날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동족간에 전쟁을 하는 것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결단이었다.

이 전쟁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전쟁을 시작한 사람일 것이다. 부모, 형제 사이라도 무차별 충격을 가한다면 사람은 본성적으로 방어를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북침이다 남침이다 격론을 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희생을 하였다. 그리고 그 여진은 오랫동안 지속하고 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물리적 전쟁은 휴전이지만, 정신적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60년대 일이다. 한 마을, 한 학교의 선배가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다. 그런데 얼마 후 집으로 신원조회를 하기 위해 사복차림의 군인이 왔다간 이후 육군사관학교 입학이 불허되었다. 소위 연좌제에 의한 결과였을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입학하려고 했던 선배의 삼촌이 월북을 했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다.

한 가족 중에도 사상을 달리 할 수 있다. 아버지 사상이 다르고, 아들의 사상이 다를 수가 있다. 다른 사상 때문에 월북을 했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그 가족은 소위 사상이 좋지 않는 가족으로 인식이 되기도 하였다. 육사를 포기한 선배는 할 수 없이 교육대학을 지원하여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는 말수가 적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남한의 자유민주주의가 못마땅하게 생각되었을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불만은 자유민주주의라면 사람을 인도적인 눈으로 판단하여야 할텐데 의시적 눈으로 바라보는 그 시선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심지어는 고향에 어린시절부터 사귀던 아가씨가 있었다. 막상 결혼을 앞두고 아픔을 겪었다. 아가씨의 아버지는 경찰 간부였다. 사위가 사상이 불온하면 자신의 출세에 지장이 된다해서 결국 헤어져야 했다.

왜 서로의 다른 사상이 서로 상생하지 못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1945년 이전부터 이 민족이 고민해 온 과제였다. 한국은 백의민족이다.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의식이 강하다. 
지금이라도 하나를 추구하지 말고, 다양한 색깔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다른 나라는 보수가 정권을 차지한다해서 진보에게 응징하거나 보복을 하지 않는다. 국민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다.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보수를 선택할 수도 있고 진보를 선택할 수도 있다.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공복이나 수권 정당이 되면 오직 국민을 위한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전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집권만 하면 지난 정권의 모든 치적을 부정적으로 보고 말살하려고 전 정부의 수장은 숙청한다.

현 정부와 주권 정당 사람들은 많은 서러움과 불이익을 당하며 어려운 경험을 많이 했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통치기간동안 자신들의 지난날 아픔을 생각하여 인사에는 탕평책을 쓰고, 정책은 전문학자들에게 맡기고 중요한 결과는 국민에게 허락받아 수행하면 된다. 그런데 왜 6.25 전쟁의 연장전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드디어는 한 종교인이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였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현 대통령 탄핵 역시 20만을 넘었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하야를 주장했다 해서 언론이 몰매를 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한 사람은 종교인이다. 언론에 나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배된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정교분리의 원칙이이란, 한 나라가 국교를 정하고 국가가 정한 국교만 믿으라고 국법으로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을 정교일치라고 한다. 1620년 9월 자신의 신앙 양심대로 종교를 믿으려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02명의 청교도가 미국 신대륙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청교도들이다.

그들이 아메리카로 간 이유는 단 하나다.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낯설고 물선 아메리카 신대륙을 향하여 갔다. 미국의 헌법에는 정교분리의 원칙적인 헌법이 제정된 것은 바로 청교도들의 뜻이기도 했다. 미국의 종교의 자유는 확실하다. 어떤 종교든 자유스럽게 신앙생활 할 수가 있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정치로부터, 권력으로부터 신앙생활의 자유를 의미한다. 종교는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 시킨 것도 기독교 보수 교인들의 결집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정교 분립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누구든지 자기의 의견을 개진할 수가 있다.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그의 학력이 어떠하든지,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어떤 종교를 믿든지 국민으로서 할 말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언론이 문제다. 있는 그대로 이런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보도하면 된다. 굳이 신성모독을 한 종교 광인 같이 비판을 하는 것은 오히려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만들고 현 정치지도자들의 귀를 막는 행위가 된다.

이스라엘의 국기에는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다. 다윗 왕 앞에 한 노인이 찾아왔다. 당신은 하야 하시오. 라고 외쳤다. 다윗은 왕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나의 죄에 대한 벌을 받겠습니다라고 그 노인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권력이란, 힘이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방편일 뿐이다. 아직도 전제주의 국가의 계급의식에 사로잡힌 의식부터 개혁하여 자유 시민다운 국민이 되어야 하겠다. 이러한 자유를 위해 순국선열들은 희생했다. 세계 16개국이 참전했다. 현충일이 있는 6월의 이름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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