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해외 관광은 우리 시대의 보편적 여가 활동이 되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이웃 일본 관광객들이 명동과 종로를 누빌 때, 매우 부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인의 발이 안 닿는 곳이 없다.

관광명소마다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즈음에 다뉴브의 비극은 깊이 애도해야 할 일이다. 수난을 당한 분들은 모두 건강한 시민들이었다. 가족끼리 여행을 떠났다 참변을 당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통절한 안타까워하며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 뒤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사랑의 보화가 숨겨 있기 마련이다. 세기적 해양사고인 타이타닉 호에서의 사랑의 이야기는 영화를 통해서 전해 들어 우리 모두가 다 잘 아는 어떤 보화 보다 값진 인간애를 건져내기도 했다.

다뉴브 강에 가라앉은 허블레니아 호가 11일(현재시각) 객실 입구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김모(6세)양은 숨진 외할머니가 끌어안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구조대 관계자는 12일 시신수습을 위해 선실로 진입한 구조대원이 나이 많은 여성이 팔로 아이를 안고 입구에 쓰러져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신원확인 결과 김양과 김양의 외할머니로 발견되었다. 인천에 사는 유치원생인 김양은 어머니(38세), 외할아버지(62세), 외할머니(60세)와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났다. 바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에서 침몰사고로 숨진 것이다. 김양과 김양의 외할머니는 11일 30대 여성과 함께 지하선실 입구에서 발견되었다.

허블네니아호 수색작전에 참여했던 헝가리 대테러청 관계자는 이들 3명은 선실에 있다가 배에 물이 차오르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함께 발견된 30대 여성은 여행사 소속 여행가이드로 확인되었다. 앞서 김양의 어머니는 지난 5일 숨진체 발견되었다.

미루어 급박한 상황을 상상해보자. 30대의 여성은 민첩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나이에다가 여행가이드를 했으니 배의 구조에 대해서 그리고 다뉴브 강에 대해서 익숙했을 것이다. 만약 이 배에 승선한 승객들중에 가장 살아나기에 유리한 사람이 여행가이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까지 할머니와 어린이를 건져보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 쓰고 자기가 살아나가는 일을 잊은 채 마지막 남은 노인과 어린아이를 구조해 보려는 노력의 실체로 결국은 자기의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닐까 쉽게 추정이 된다. 가이드는 여행사에 얼마의 대가를 받고 단체 내지는 개인의 여행을 안내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는 내가 안내를 시작하여 내가 끝나는 시간까지 안전히, 그리고 즐겁게 여행하도록 도와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 길지 않는 침몰 시간에 가장 나중까지 노약자를 구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주어진 짧은 시간 살아날 수 있는 찬스를 희생한 것처럼 생각된다.

이 얼마나 값있는 죽음이며, 희생이며, 책임감의 수행인가?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지만 가이드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다. 여행 중 지정한 상회에 데리고 가서 물건을 사게 하는 자기의 유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한 직책이다. 그런데 자기가 맡은 관광객의 안전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생명도 돌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다.

또 한 사람이 있다. 헝가리인 선장이다. 한국인 33명을 태우고 침몰한 허블레니아호 선장 록보스라슬로(58세)씨는 11일(현지시각) 자신의 배 조타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선체 인양과정에서 맨 먼저 조타실이 수면위로 드러나자 구조대원들이 조타실 의자 밑에 누워있던 록보스 선장의 시신을 바지선 위로 옮겼다.

허블레니아 호 조타실은 높이 5.4m인 선체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창문이 성인 남성 한 명이 충분이 빠져 나올 수 있는 크기로 좌우측에 달려 있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러나 록보스 선장은 마지막까지 조타실에 남아 배와 운명을 같이 했다.

헝가리 대테러청의 한 관계자는 선장이 배를 두고 자리를 뜬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록보스 선장은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매일 기도하며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숭고한 삶의 자세인가? 이런 선장이 이끄는 배에 탄 사람들은 행복한 여행을 했다고 해야 마땅하다. 물론 참사 자체는 아프기 그지없지만 잠시나마 빼어난 인격자의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책임을 성실히 다하고 서로 서로 약속을 지키는 세상이라면 살맛나는 세상이다. 6세의 어린 김양은 외할머니의 품에 안겨서 생을 마감했다. 안타깝고, 불쌍하고, 연민의 정이 간다. 외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손녀를 살려보려고 가슴을 열어 손녀를 끌어 앉았을 것이다.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순간 마지막 생명이 살아있는 순간의 행동, 이것은 그의 인격의 총체적 결단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사랑하는 외손녀를 가슴에 안고 먼 여행을 새롭게 떠난 외할머니와 손녀의 명복을 빈다.

세상살이 살기 싫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서로가 서로의 책임을 다해 희생해주며 삶의 진실을 서로서로 나누며 사는 세상이라면 살만한 세상이다.

우리의 입술에서 쉽게 세상을 원망하는 말은 삼가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은 좋은 세상이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다뉴브에서 건진 보화는 그 어떤 보화보다 값진 인간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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