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신문] 빈지노의 ‘Aqua Man’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로 돌아가 보자.
제목을 보고 노래 내용을 맞힌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거의 없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나조차도 그랬다. 이런 내용일 줄 몰랐다. 이 노래가 요즘에 나왔다면 사람들은 마블시리즈를 떠올렸으려나.
“하루 종일 너란 바다 속을 항해하는 나는 aqua man / 헤엄 헤엄 헤엄 / I'm rolling in the deep inside of you / 너의 어장은 너무 캄캄해 / 헤엄 헤엄 헤엄”
‘Aqua Man’은 좋아하는 여자의 어장에서 헤엄치는 남자를 ‘아쿠아맨’으로 표현한 노래다.
비유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몇몇 다른 노래를 생각나게 한다. 힙합을 여성에 빗댄 커먼(Common)의 ‘I Used To Love H.E.R’, 그리고 총을 둘도 없는 친구로 비유한 지유닛(G-Unit)의 ‘My Buddy’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러한 비유와 상징이 힙합의 전유물은 아니다. 하지만 기발한 비유와 절묘한 상징이 오랫동안 랩 가사의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존재해오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흔히 말하는 ‘펀치라인’이 그렇다. 사람들은 어떤 펀치라인에 감탄해 왔는가.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답은 기발한 비유와 절묘한 상징이다.
하지만 ‘Aqua Man’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따로 있다. 이 노래는 당시 한창 논란이 되던 ‘힙합의 대중화’와 관련해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두 가지 개념에 관해 여러 번 글을 쓴 적이 있다. ‘힙합의 대중화’와 ‘대중화된 힙합’. 얼핏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다.
당시 둘을 가르는 기준은 음악적 무장해제의 정도였다. 먼저 힙합의 대중화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보유한 고유의 문법과 틀을 최대한 유지한 채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이었다.
반면 대중화된 힙합은 대중에게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힙합이 지닌 특유의 태도와 멋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포기하는 것을 뜻했다.
‘Aqua Man’은 전자였다. 일단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 <24:26> 자체가 랩의 수준과 멋을 잃지 않으면서도 일관되고 질 좋은 프로덕션으로 채워진 작품이었다.
여기에다 각종 지루하지 않은 장치까지 포섭하면서 <24:26>은 힙합 팬은 물론 가요 팬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앨범은 빈지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중에서도 ‘Aqua Man’은 화룡점정이었다. 과연 이 노래를 ‘발라드랩’이라고 부르며 깎아내릴 수 있었을까.
또 후렴에서 빈지노가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Aqua Man’을 ‘가짜’라고 하거나 빈지노의 랩 수준을 폄하할 수 있었을까. 비트를 만든 진보의 샘플링은 어떠한가.
‘Aqua Man’은 힙합과 대중성을 맞교환하지 않았다. 대신에 ‘Aqua Man’은 아무 것도 내어주지 않고도 거대한 대중성을 얻는 데에 성공했다.
‘Aqua Man’은 힙합과 대중을 모두 잡은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