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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칼럼] 가을, 어느 식탁에서 생긴 일

부천신문 l승인2019.10.16l조회수 :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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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입이 열댓발 나온 민노총 출신 며느리가 추석날 시집에 와서 전 부치고, 밥상 차리고 한 일을 가사노동을 했다고 SNS에 올린 그녀, ‘오지 말지 왜 왔어?’ 하면서도 오지 않으면 날벼락 칠 시어머니 광화문 엘리지의 여왕, 서초동 집회에 나갔다 와서 이젠 흥미 없어 하는 민주당 출신 아들, 말없이 이 말 저 말 듣기만 하고 밥만 드시는 보수 꼰대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끼어서 DMZ의 역할을 하는 둘째 아들, 시절과 상관없이 게임만 하고 있는 손주들, 이 양상이 오늘의 제2차 한국 전쟁의 진영이다.

한국과 북한의 국경은 6.25 한국 전쟁을 통해서 분명히 갈라져 있다. 그 중간지점이 DMZ이다. 그러나 제2차 한국 전쟁은 진영이 없다. 꼰대 보수 할아버지가 식후에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침묵의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니 발언할 시간이 충분히 허여된 듯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아들이 찾아왔다. ‘아버지, 나는 먼 타국을 가서 거기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침묵하셨다. 몇 번이고 졸라댔다. 적어도 이 아들에게는 먼 타국이 이상의 나라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침묵하는 이유는 아버지도 젊은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젊은 날에 이상을 추구하여 먼 타국으로 갔다가 몸살을 앓았던 경험이 있으시기에 침묵하셨다. 먼 타국이란, 말 그대로 타국이다. 타국에는 우리나라처럼 우리를 위하는 나라가 아니다. 낯선 나라이다. 그리고 방종의 나라이다. 그 방종이 얼마나 아픈 상처를 남기는 가를 아버지는 잘 알고 있기에 침묵하셨다. 아들이 아버지를 못살게 했다. 계속 채근하였다. 할 수 없이 허락을 했다. 체험한 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직접 경험해 보아야 알 것이다.

아들은 버릇없이 상속할 유산을 내어달라고 했다. 타국에 가서 살아야 할 여비를 달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깊이 생각하다가 살 수 있을 만큼의 지분을 떼어 주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화색이 만연하여 타국으로 떠났다. 그의 처음 타국 생활은 새 친구도 많았고, 밤마다 연회가 벌어지고, 쾌락이 가득했다. 그는 가져온 여비로 흥청망청 낭비를 했다. 어느 날인가 여비가 다 소진되었다. 돈이 없어진 것이다. 그 시간부터 친구는 모두 떠나가고 그토록 친절하던 레스토랑 주인이나 여종업원은 마치 투명인간 보듯 한다. 멋진 의상을 코디해주고, 맞춰주던 양복점 사장은 얼굴을 마주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호텔 주인은 물론 종업원까지 갑자기 조폭들로 변했다.

그가 잠잘 수 있는 곳은 돼지우리, 그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돼지가 먹는 사료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존심이 있어 집으로 돌아가기란 어려웠다. 특히 맏형의 질책과 미움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더는 견뎌낼 수 없었다. 고향 집으로,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천신만고의 고생을 하면서 고향집에 가까워 왔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 들어서기가 그토록 힘들었다. 발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그의 앞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의 목을 쓸어안고 우시기 시작했다. ‘이놈아! 가지 말라고 했지 않았느냐? 왜 갔느냐? 이 고생이 웬 말이냐? 너의 이 몰골이 뭐냐? 도대체!’ 하면서 우셨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벌였다. 죽었던 아들이 다시 돌아왔다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여기까지 말씀하시고, 찻잔을 비우시고 자리를 떴다.

온 식구는 할아버지(시아버지) 말씀을 들은 후 오랜 침묵이 흘렀다. 경험세대의 경험담을 듣지 않는 세대, 그 세대는 이상에 홀리기 쉽다. 사회주의가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가를 알지 못하고, 선전과 선동에 능수능란한 그들의 재주에 모두가 솔깃하여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들에게 물어보라. 북한이 어떤 세계인가. 그들의 말도 못 믿는다면 그대는 마치 칼 막스가 7일간 굶주려서 공산선언문을 작성할 때 유령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고 했던 그 경지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라. 생존의 극단적 위기를 만난 사람은 허상을 가장 이상적 세계로 몽환(夢幻)을 하고, 극단적 생존위기인 자기 현실을 탈출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이를 유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유령이 경험세대가 경험한 실제적인 경험담을 아버지가 돌려주어도 외면해 버리고, 애드벌룬처럼 띄어놓은 이상의 유령에게 홀리어서 마냥 천방지축 달려가는 오늘의 자녀세대를 보며 긴 한숨만 쉬고 있다. 역사 단절을 누가 시키는가? 개인주의의 사조와 매스컴에 의한 대화의 상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통한 사실 검증 없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대이다. 여기에다 30-40세대는 80년생이다.

한창 민주 투쟁의 사투가 벌어지던 세대에 교실에서 전교조의 사상교육으로 잘 학습된 인격들이다. 경험세대의 이야기는 꼴 보수적 의식에 노예가 된 꼰대들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듣지도 아니할 뿐 아니라 아예 무시해 버린다. 도대체 소통이 꽉 막힌 노년은 폐기물에 해당된다. 부모세대도 이질적 존재로 여긴다.

할아버지가 자리를 비우자 죽어도 시집을 안 가겠다고 우기던 딸이 한 마디했다. ‘조국이라는 사람 미남이던데 그런 사람 같으면 난 결혼할지도 몰라. 그리고 그의 아내 역시 대단한 사람이야. 요즘 어머니들이 자녀를 위해서 하는 역할이 그런거 아니야? 스카이캐슬이란 연속극이 그냥 쓰여진 시나리오가 아니에요. 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공감이 되어 시청률이 높은 거 아니에요?’ 하자 가족 모두가 다시 조용해졌다.

어느 가을날 있었던 어느 가정의 식탁에 있었던 일의 소묘이다. 경계선 없는 집에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지금 한국은 세대별, 지역별, 성별, 사상별, 각기 분열된 제2차 한국 전쟁이 치열하다. 북에서 한 젊은이가 피식 웃고 있다. ‘왜 이렇게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잘 되는 거야.’ 하고 말이다. 분열하면 망한다는 원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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