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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칼럼] 시민은 희망하고 싶다.

부천신문 l승인2019.11.06l조회수 :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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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이데올로기(ideology), 사람들이 생각해 낸 이상 이루기 방법 논리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의식화되어 그물에 걸린 고기처럼 꼼짝달싹을 못하고 있다. 즉, 그물에 걸린 고기가 그물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이데올로기는 추종하는 자들을 서서히 노예화하고 있다. 맹종하는 가축처럼 만들어가고 있다.

거리를 메우는 군중들을 보며, 저 사람들을 거리로 몰고 온 힘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나니 사람이 무리로 보여졌다. 누가 저 사람들을 이렇게 모이게 했을까? 이데올로기다. 물론 분노도 포함된다. 그러나 실제는 이데올로기의 노예들이 울부짖고 있다. 촛불혁명이라고 한다. 촛불은 가면이다. 실제 종북 사회주의 혁명이자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데올로기가 생명을 걸만한 가치라고 여겨졌다. 이데올로기를 공부하고, 그것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생각하는 80년대의 세대가 있다. 이데올로기 전쟁에 참전했다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체 전사한 숫자가 부지기수이다. 과연 이데올로기는 목숨을 주고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자본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본주의를 제창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론의 실제를 잘 알지 못한다.

자본주의 이론을 알고 선택한 사람들이 몇 %나 될까? 아마 극소수일 것이다. 그래도 거리로 뛰쳐나온다. 왜 나왔느냐 물으면 현 대통령이 간첩이다 라고 과격하게 말하는 사람들부터 현 정부의 정책이 종북 사회주의로 가기 때문이다 라는 사람들까지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개념은 모른다. 그 이유는 권력을 탐하는 자가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권좌에 앉아 통치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북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시절부터 지하에서 막시즘을 철저하게 공부한 사람들은 다소 이해한다. 그러나 그 외에는 종북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4.3 제주사건에서 일가친척이 죽었다. 그래서 나는 종북 사회주의자다. 여수 반란사건 때, 국군에게 내 가족과 친척이 해를 당해서 나는 종북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뿐인가? 나는 어느 특정 지역 사람이다. 우리는 군사 독재 아래서 차별대우를 받았다. 억울하여 종북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막시즘이 생산경제 이론인지, 종북 사회주의자가 인간 신격화 이론인지 잘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기운이 돌기 시작하고 있다. 떡볶이 장사하는 K라는 사람이 더불어민주당을 신랄하게 비판하더니 지금은 자유한국당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의 심사는 무엇일까?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권좌에 앉아서 거들먹거리는 정치인들이 싫다는 것이다.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탈 이데올로기를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폴란드는 우리보다 앞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경험해 보았다. 레흐 바웬사는 1943년 9월 29일 태어났다. 자유 노조 지도자이며, 민주적 방법으로 1990년부터 1995년 대통령을 지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다 맛본 폴란드의 어느 지성인은 ‘자본주의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밟고 서 있는 체제라면 사회주의는 거꾸로 다른 인간이 한 인간을 밟고 서 있는 체제이다.

결국은 내가 다른 사람 위에 서 있으면 정의롭고, 다른 사람이 나의 위에 군림하면 부당하다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고 했다. 이데올로기는 의미가 없다. 누가 누구의 위에 올라서는가 문제가 문제다.’라는 것이다. 결국 이데올로기는 남의 위에 서기 위한 자들의 가면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도 경험해 보았다. 사회주의도 경험해 보았다. 다른 점이 없더라. 결국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젠 누군가 탈 이데올로기 시대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전 법무부장관 조국이 물러갔다고 해서 시원하지도 않다. 두 대통령을 감옥에 가두어둔다고 달라진 것도 없다. 국민은 희망하고, 평안하게 살고 싶어 한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이끌림을 갈급해 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을 행사하며 무엇을 해주겠다라는 공약은 실제는 납세하는 국민의 살과 피를 뽑아서 자기들의 공로처럼 선전하고, 선심을 쓰는 것이다. 이것 역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하나의 미끼이고, 수단이다. 예를 들면, 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방사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원전공사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대체 에너지로 태양광 발전 시설을 대대적으로 시도했다.

이 태양광 발전 사업은 프리미엄이 너무나 많다. 주관적 경험이지만 이 일을 맡아서 하는 인사는 모두 종북 사회주의 사상으로 시민단체란 간판을 걸고 활동하던 사람들이다. 자기들끼리 잔치이다. 권력 창출에 수고한 보답으로 비친다.

이젠 정치 자체에 염증을 내는 국민도 많다. 누구를 믿으랴? 믿을 사람이 없다. 총선도 다가오고 있다. 또 찍어야 하나 고민스럽기만 하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 당이 그 당이다. 국민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메시아 기다리듯 기다리고 있다. 국민은 안정되고, 평안한 새 이끌림을 고대하고 있다. 절망의 삶의 자리에서도 시민은 희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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