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용서를 받아야 할까?

부천신문 l승인2020.05.20l조회수 :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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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40년전 빛고을에 있었던 피흘림 사건의 주범은 폭력이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coup d’Etat)가 시작되었던 그때, 전 국민들은 긴장하였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를 지나 혁명 공약이 발표되었다. 그 이후 기존집권자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은 없었다. 경제개발 5개년이라는 청사진을 발표했을 때, 그 당시 국민의 의식은 명분 우선순위이고, 경제 성장은 뒷전이었다. 절차를 무시한 정권 교체에 대해 끝없는 항거가 있었다. 소위 군부독재 물러가라는 구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동장까지 조직 개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독재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사건이 있기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를 위한다’라는 이미지를 계속 지켜왔기 때문이다. 반공이라는 기치는 미국과 일본의 신임을 얻어 외교는 삐그덕 거리면서 유지해 갔다.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되었다. 1960년대 말 베트남 파병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강제로 차출을 했다. 이때, 남의 전쟁에 우리가 왜 참전하느냐고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970년 초에는 서로 가기 위해 지원하는 병사가 많았다. 이 피흘린 대가로 고속도로라는 길이 열렸고, 수출주도경제를 시작하여 노동자의 희생은 있었지만, 일자리가 넘쳐흘렀다. 또한 기회의 시간이 창출된 것이다. 새마을운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생산 동기와 근로자의 근면 의식, 그리고 공동체 결성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하여 군사독재는 정권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 후 다시 군부가 정권을 계속하므로 봄을 기다리는 민주 세력은 즈윽히 실망이 컸다.

결국은 빛고을에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민주화의 외침이었다. 비단 빛고을만이 아니다. 부마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저기 국민들은 80년대를 맞으면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점점 커져 갔다. 당연한 귀결이다. 정치학 서적에는 국민소득이 만불이 되면 국민의 삶의 질의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고 있다. 80년대가 바로 이러한 시점이었다. 굳이 광주뿐만이 아니다. 서울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최류탄 가스가 거리를 매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비폭력 민주 운동이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고문을 당하고 죽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비폭력 항거였다. 비폭력 항거는 인도의 간디가 대표적이다. 이 영향을 받아 미국의 흑인 운동가 마틴 루터킹 목사 역시 비폭력 인권 운동을 하다가 비명에 죽었다. 명분이 한없이 옳다고 하더라도 인권 운동이나 민권운동이나 사람을 위한 운동이다. 그러므로 폭력은 용인을 할 수가 없다. 이를테면 임꺽정이 아무리 선한 동기에서, 선한 일을 위해서 도둑질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비윤리적이었기에 소설로 머무는 것뿐이다. 홍길동전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적 사건 중에 조선의 창건 이전 이성계 태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칼로 세운 나라이고 보면 항상 피가 흐르는 왕조이었다. 이 왕조의 몰락은 후대에 일본에 나라를 내어주게 되었고, 국민들의 고통과 수난과 아픔, 죽음과 희생으로 창살 없는 감옥에서 36년의 세월을 보냈다. 동학이 일어났을 때도 군주가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여 일본도에 의하여 수없이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아쉬운 것은 동학들이 무기를 들지 않았으면 어떠했을까? 상상해볼 때도 있다. 폭력 앞에 떼죽음을 한 것은 한국전쟁이다. 인류가 지구촌에 살기 시작하여 가장 억울한 죽음들이었다. 국민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위해 국민이 죽어갔다. ‘누가 전쟁을 시켰는가?’와 ‘왜 전쟁을 해야 했는가?’는 다른 질문이다. 이 질문은 누구도 답할 수 없다. 순국한 피만 답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 사이에도 패싸움이 있었다. 패싸움의 동기는 힘쎈 놈끼리 감정대립에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시비를 걸어오는 측 없이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립묘지에 가서 물어보라. ‘누구나 살 수 있으면 살아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죽은 이만 아픈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는 가정, 그리고 모임, 회사 어디에든지 편이 갈라서 있다. 사실은 보수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보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모른다. 그렇다고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에게 진보의 핵심가치가 무엇이냐 물으면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패로 갈린다. 누구 때문일까? 결국 권력 투쟁을 하는 사람들로 인한 이유없는 패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자유경제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사회주의라고 좋은 것만도 아니다. 서로 권력을 잡고 싶은 욕망의 두 전차(戰車)가 독식하려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40년전 빛고을 피 흘림도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포용했으면 어떠했을까? 그 당시 야당과 불법으로 집권한 당이 머리를 맞대고 조금만 배려만 있었다면 그날의 아픔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광화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문재인 나와라’라고 외친 사람들에게 나와서 ‘나왔다. 보라. 대화하자.’라고 했으면 광화문에 있었던 사람들의 응어리가 풀렸을 것이다. 무엇을 원하는가? 담백하게 대화를 했으면 지금의 양분(兩分)은 없었을 것이다. 의석(議席)은 여당이 다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국민의 반은 야당이 되었다. 지난날 빛고을의 아픔은 지금도 언제나 가능하다. 양대 세력의 충돌은 가능하다. 빛고을 사태가 대구에서, 혹은 부산에서 어디서 시작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누가 누구에게 용서할 사안이 아니다. 원탁에 앉아야 한다. 다시는 40년 전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땅에는 폭력은 정당화 되어서는 안된다. 폭력이 비폭력을 향해 참회해야 하고, 분쟁이 평화 앞에 용서를 빌어야 하고, 편 가르기가 화해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정죄의 돌을 내려놓아야 한다. 죄 없는 자는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폭력이 피흘린 자들에게 사죄하여야 한다. 정작 용서를 받아야 할 자는 모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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