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는 격언이 있다. 이 말은 불성실한 다변(多辯)보다는 무엇의 성실이 더 가치 있다는 교훈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침묵이 웅변보다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수사학상의 한 기교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해석도 가능하다면 침묵이 웅변보다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은 어찌 된 일일까.
서양화와 동양화의 차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지적될 수 있지만 전자가 여백을 적게 남기는 데 비하여 후자는 여백을 많이 활용하는 것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의 서양화는 전 공간을 점유해 가는 경향이 강한 데 비하여 대개의 동양화는 여백으로써 그림의 효과를 얻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회화에 있어서 색채나 선이 언어에 해당되며 색채나 선의 활동이 웅변으로 볼 수 있다면, 회화의 효과를 더욱 빛낼 수 있다는 것은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는 격언을 회화에 적용한 일례가 되는 것일까.
침묵이 필요한 세상이다. 우리의 일상은 그다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참으로 많이 하고 산다. 절제되지 않은 말, 거친 말들이 자연스러운 용어가 되어 넘쳐 나는 세상이다. 참으로 숱한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이 걸러짐이 없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하는 말들의 대부분은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말들이며 오히려 상당수는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로 가득하다.
입이 가벼우면 생각이 가벼워지기에 경계에 닥쳐 금방 울고 웃고 휘둘리기가 쉬워지며, 온갖 화를 만들어 내기에 제 몸을 스스로 깎고 멸하게 한다. 언어를 씀에는 모름지기 절제된 맛이 있어야 한다. 한 마디의 말도 어렵게 어렵게 꺼낼 줄 알아야 한다. 마땅히 절제하되 입을 열 때에도 맑게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가만히 자신의 언어생활을 관찰해 보라. 그래서 불필요한 말들을 하나하나 줄여 보라. 온전한 말, 밝은 말, 꼭 필요한 말들만 어렵게 꺼내 놓어 보라. 말이 줄어들면 마음이 단아해진다. 말이 줄어들면 몸과 마음 또한 함께 고요해진다.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침묵하는 자는 들뜨지 않으며 가볍지 않고 쉽게 행동하지 않는다.
침묵하는 이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침묵하는 이의 내면세계는 언제나 고요하기에 마음의 중심이 밝게 서 있기 때문이다. 고요하면 내면이 번잡하지 않기에 늘 맑은 영혼을 지켜낼 수 있다. 조금씩 안으로 비추어 볼 겨를이 생겨난다. 그런 고요함에 익숙해지면 저절로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일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그것이 참다운 묵언의 힘이며, 당당함이다. 마땅히 크게 침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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