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24> 부천만화정보센터 김태원

한국만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부천만화산업종합지원센터에 둥지를 틀고 밤낮 작업실에 파묻혀 그림에만 몰두하고 있는 작가들을 차례로 만났다.

이번 주는 작가들이 마음껏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천만화정보센터 김태원 대리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만화를 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직장”

3년 전 부천만화정보센터와 인연을 맺었다는 김태원 대리는 올해 34살이다. 만홧가게를 하시던 큰아버지가 사업을 정리하면서 가져온 만화책을 4살 때부터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 대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기업에서 일본 성인만화를 온라인과 모바일 쪽으로 유통하는 일을 했었고 국내 작가들과 성인만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3년 전 부천만화정보센터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천만화정보센터를 만화기획자나 만화편집자들은 물론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직장’이라고 말한다. 작가들을 산업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 만화 발전을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김 대리는 부천만화산업종합지원센터에서 작가들과 출판사를 매칭 시켜주는 ‘부천 비즈니스 프로모션(BBP)’, 우수 기획자를 양성하는 ‘만화기획자 과정’, 우수만화동인지 작업 등을 진행하다가 2년 전부터 온라인 창작만화 사이트 ‘코믹타운’을 운영하고 있다.

집에 쌓인 만화책이 무려 6,500여권

김태원 대리가 매달 10~20여만 원씩을 꼬박꼬박 투자해 모으기 시작한 만화책이 무려 6,500여권에 달한다. 만홧가게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책장을 빼곡히 메운 만화책에 압도당할 지경이다.

“아내 뱃속에 있는 4개월 된 우리 아기를 생각하면 만화책에 투자하는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그는 “따끈한 방바닥에 배 깔고 엎드려 만화책을 보는 기분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악착같이 만화책을 모으는 일 외에도 4만여 명의 만화가 지망생들이 활동하고 있는 ‘만화가의 길을 걷기위해’라는 온라인 카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번 무료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가 진행하는 강의를 들으러 오는 회원들의 연령대는 중·고등학생이 대부분이지만 초등학생부터 60대 어르신까지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만화를 그릴 수 있는지, 등단한 작가들의 수입은 어느 정도인지, 끝도 없이 질문이 쏟아진다고.

김 대리는 회원들에게 자신이 진정 돈을 많이 버는 만화가가 될 것인지,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말을 자주 한단다. 그리고 일단은 무조건 열심히 그려서 잡지사든 온라인이든 부천만화정보센터든 찾아가서 컨설팅을 받고 무엇이 부족한지 알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배들을 위한 책...직접 써버렸다”

김태원 대리는 그동안 만화기획자나 편집자들이 볼 수 있는 책이 마땅히 없어서 늘 불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해 여름부터 자신의 실무경력을 토대로 후배들이 볼 수 있는 책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고.

그는 “지난해 만화축제 학술대회 때, 학생들이 교재로 사용할만한 책이 없다는 얘기가 나왔었다”며 “그런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써서 후배들에게 만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초보 만화가들이 어떻게 해야 좋은 만화가를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과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휴가를 이용해서 인터뷰를 많이 했고 현장의 목소리를 실으려고 노력했다”며 “아직은 마무리 단계지만, 곧 따끈따끈한 책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편집자는 작가의 러닝메이트”

김태원 대리는 만화정보센터에 오기 전에 있었던 K모 작가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모 통신사에 3회 분량의 작품을 올리기로 계약을 하고, 작가가 개인적인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500만원 선금을 지불했는데 어느 날부터 아예 연락이 두절된 것.

결국 작가 집으로 찾아가게 됐는데 화실에 불도 켜져 있고 소리도 들리는데 아무리 두들겨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밤새 그 앞을 지키고 서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문이 열린 화실에 들어가 벌러덩 누워 작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단다.

김 대리는 “돈도 돈이지만 작가와 연락이 안 되니까 업체와의 신뢰가 무너질까봐 담당자 입장에서 많이 힘들었다. 당시 K모 작가 나이가 어려서 마감에 대한 압박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날 이후 작가와 날밤을 새면서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함께 고생했다”고 전했다.

그는 편집자마다 작가를 관리하는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러닝메이트로서 인간적인 마음으로 접근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작가의 집 화장실도 청소해줄 수 있을 정도의 마음으로...

20년 후엔 폐교를 이용한 ‘만화캠프’ 운영할 것

김태원 대리는 어릴 때부터 돈을 많이 벌면 아파트 한 동을 사서 만화가들에게 분양하고 작품 활동을 하도록 하겠다는 꿈을 꿨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천만화정보센터가 지원관을 통해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고, 자신은 또 다른 꿈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단다.

20년 후, 50대 중반이 됐을 때 자신의 모습이 그려볼 수 있겠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지방에 있는 폐교를 하나 사서 만화캠프를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아직도 문화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이 많다. 그때쯤 되면 내가 모은 책이 3~4만권쯤은 될 거니까 한 쪽에 멋지게 전시하고, 2층은 작가들 화실로, 1층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만화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올 수 있는 만화캠프를 운영하고 있을 것”이라며 “만화종합엔터테인먼트 수련원 정도라고 하면 되지 않겠냐”고 웃어보였다.

한국의 만화대통령은 바로 ‘나’

구글 사이트에서 ‘만화대통령’이라고 검색을 하면 김태원 대리가 운영하고 있는 만화가닷컴(manhwaga.com)에 접속할 수 있다.

김태원 대리가 쓰고 있는 책의 내용을 조금씩 올리기도 하고 만화와 관련된 각종 소식을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그는 “만화가닷컴을 통해 만화에 대한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며 “욕심 같아서는 초대형 포털사이트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만화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한지도 10여년 정도가 됐다는 그는 한국에서 만화를 가장 잘 알고, 만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부천만화정보센터 김태원’이라는 이름이 나올 정도가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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